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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5세 繼廷) 신도비 / 栢江

2018.10.20 21:35

栢江 조회 수:113

전액(篆額) : 三重大匡 檢校太師 守太保 門下侍中 開府儀同三司 判吏部事 上柱國 太子太傅 忠烈 長興 魏公繼廷 神道碑銘 幷序

 

충렬공 신도비 전면.jpg

비양(碑陽) : 門下侍中 忠烈 長興 魏公繼廷 神道碑銘

충렬공 신도비 1.jpg

 

충렬공 신도비 2.jpg

 

충렬공 신도비 3.jpg

 

위씨는 문장과 절의를 긍지로 삼은 장흥의 망족望族이다. 이러한 문풍은 신라에서 시작되고 고려에서 현저하였으며 예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휘계정繼廷에 이르러 더욱 빛났다. 시조는 신라 선덕여왕의 청으로 당태종이 파견한 한림학사 위경魏鏡인데 서기 638년 동래하여 백성을 계도한 공으로 아찬에 이르고 고려 충선왕 때 회주군懷州君으로 추봉되었다. 회주는 장흥의 고호다. 이후 298년간 실계失系하여 여초의 시중 창주菖珠를 중조로 기일세起一世하였다. 2세는 문하승선과 감찰어사 달이요 3세는 중랑장으로 자금어대를 받은 원보原補이며 4세는 문하시랑동평장사를 역임한 기로耆老. 5세 계정繼廷은 시호가 충렬忠烈이요 평장사의 차남으로 1038년 장흥에서 출생하였다.
공은 문종조에 문과 급제하여 예종에 이르기까지 6조에서 봉직하였다. 문종 때 좌보궐에 올랐고 선종 때는 지제고 어사중승 등의 요직을 맡아 왕을 간쟁諫爭하고 왕명을 집행하는 조서詔書와 국서國書를 작성하는 사신詞臣으로 일하였다. 숙종 때는 예부상서 한림학사 이부상서 빈객 소보 한림원사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상주국 참지정사 문하시랑평장사 개부의동삼사 수사도판례부사 판이부사 등의 중책을 수행하였다. 예종 때에도 삼중대광 태자태부 수태위 문하시중 검교태사 지공거 수태보 등을 두루 거쳤다.
공의 생애는 나라와 백성을 위한 삶이었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해동역사 海東繹史 등에 등재된 공의 행적을 보면 예부시랑 재임시인 선종 3년 음력 1115일 왕을 수행해 법왕사 팔관회 행사를 마치고 환궁하던 중 왕이 왕족들에게 장수를 축원하는 잔치를 베풀자고 하명하였다. 공은 호부상서 이자인李資仁과 함께 아뢰기를 백성들은 가뭄으로 살기 어려운데 왕족들이 술을 마시며 노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주청해 중지하게 되었다. 어사중승 때는 선종의 애첩 만춘萬春이 자신의 집을 호화롭게 짓고 있었다. 공이 아뢰기를 만춘이 전하를 기망하고, 백성들에게 괴로운 부역을 시켜 큰 사저를 신축하고 있으니 그것을 즉시 허물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주청하였다. 왕은 듣지 않았지만 질책하지도 않았다. 추밀승선 때 왕이 연등행사 후 연회에서 공에게 춤을 추라고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영인伶人이 있는데 어찌 신이 춤을 추겠습니까라며 거절하였다. 그러자 신료들이 놀라면서 춤을 추라고 권유했다. 공이 정색을 하면서 일찍이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전하의 말이라도 ’‘ 만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 하셨다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때부터 불가상서不可尙書란 별호가 붙었다. 1087년 송나라에 박경작朴景綽과 함께 사행使行했을 때 공이 읊은 천인채산경일기千仞綵山擎日起 일성천락루운래一聲天樂漏雲來 천 길의 채산이 해 받치고 솟아나자 즐거운 천상 음악 구름 속에서 울려오네 라는 상원절 관등시가 송나라 정치가인 심괄沈括의 저서 보필담補筆談에 실려 전해온다. 두 번째 사행은 공이 예부시랑이던 1090년 음 7월 호부상서 이자의李資儀와 사은진봉사賜恩進奉使로 송나라에 갔다. 공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일행은 진귀품을 다량 구입해 왔지만 공은 빈손으로 오니 불가상서 不可尙書에다 청백리淸白吏라는 별호가 더해졌다. 공이 쓴 하천안절표賀天安節表는 해동의 명문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요나라 도종의 생일을 축하하는 표문으로 동문선에 실려 있다. 1096년에 즉위한 숙종은 공의 학덕과 인품을 높이 보아 요직을 두루 내렸다. 1105년 숙종 10년 급환으로 왕위를 예종에게 양위하면서 문무백관을 불러놓고 후사를 당부하는 숙종 교서에 재신宰臣 위계정 이하 문무백관에게 교서하노라.” 하였으니 공에 대한 지극한 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공은 예종의 즉위식 때 백관을 대표해서 옥새를 진배하였다. 예종은 즉위한 후 공에게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시중을 맡도록 하였으나 노환을 이유로 극구 사양하였다. 그럼에도 왕이 강권强勸함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시중을 맡은 지 반년 만에 건강을 지탱할 수 없자 체직을 주청하였다. 그래도 임금은 윤허하지 아니하고 류인저 한교여를 보내 개유開諭를 하고 차와 약을 보냈으며 200일 휴가를 주는 등 2년 동안 계속 은전을 베풀었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지 않자 마침내 체직을 윤허하면서 삼사로 하여금 2분록을 주게 하였다. 공은 임금이 내린 은전도 사양하다가 1107년 타계하였다. 17대 인종은 공을 예종 묘정에 배향하라며 아래와 같은 교서를 내렸다. “삼중대광 검교태사 수태보 개부의동삼사 문하시중 판이부사 상주국 위계정은 청검이 한 때를 드리웠고, 공의 덕행은 백관들이 중히 여기었으니 실로 이는 백성의 선각자다. 숙종의 고굉 대신으로 예종이 즉위할 때 친히 옥새玉璽를 진배하고 홍기鴻基를 힘써 도왔다. 선생을 배향함에 어진이를 공경함이 더욱 드러난지라 비록 죽었으나 살아있는 것 같아 충혼이 영세하리라. 충렬忠烈의 증시贈諡를 더하노라 하였다. 한편 공은 고려 통일대전과 회주사에도 배향되었으며 묘는 장흥군 장동면 하산리 연하동 손룡갑원이다. 후손 중에는 원개元凱 문개文凱 형제가 장원급제함으로써 생가 뒷산을 장원봉이라 칭했다는 유래비由來碑가 있다. 원개는 불가에 귀의하여 송광사 6대 사주가 되었으며 입적 후 원감국사圓鑑國師 시호를 받았다. 국사는 시문에 밝아 동문선에 최치원 선생 다음으로 많은 문장이 실려 있다. 임란 호란 등 국란을 당하여 창의한 충의사 30위의 위패가 창평의 조선 오란 충혼탑朝鮮五亂忠魂塔에 새겨졌고 호조참의 창조昌祖는 어명으로 북도능전지北道陵殿誌를 저술하였으며 실학자 백규伯珪90여권의 저서를 남겨 공의 드높은 충절과 문맥을 잇고 있다.
2018년 장흥위씨 도문회 총회에서 후손 황량滉良이 문중의 숙원인 충렬공 신도비를 근수 헌성하겠다고 제의함에 이를 수용하면서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정우禎佑 정철正哲 위원이 관련 자료를 정리 지참하고 불녕不佞에게 비명碑銘을 청하여 한사코 고사하다가 마침내 사양하지 못해 사실을 정리하고 이어 느낀 바를 명하노니
하늘이 점지한 정토淨土 회주향 위문 천세의 찬연한 햇살이어라 문종조에 등과하여 육조六朝의 초석을 닦아 놓으시고 문장이 빼어나 조서詔書와 국서國書를 찬하니 임금의 뜻 앞서 헤아려 군신간의 도리를 세우셨네 시문詩文은 신묘하여 송나라에까지 떨치고 하천안절표문賀天安節表文은 동문선에 실려 후세에 빛나네 임금님 말씀이라도 도리에 어긋나면 불가함을 간쟁 諫爭하셨고 청빈함이 맑은 물 같아 청백리라 회자 되었네 숙종은 문무백관 중 으뜸 신하로 세워 후사를 당부하는 교서 내리시고 예종 즉위 때는 옥새를 공께서 직접 진배進排하셨네 즉위 후 문하시중을 제수했으나 노환을 들어 체직을 주청하고 임금은 불허하며 몇해 동안 붙든 손 놓지 못했으니 군신간의 애틋한 정이 얼마나 간절했던고 하오나 천명을 어찌할고 오호라 애통 하도다 고려 하늘 부려 놓고 훨훨 하늘 길 가셨네 인종은 부왕의 유지 받들어 예종 묘정 배향하고 충렬 시호 더 하였네 군신과 목민의 도를 아울러 세우신 공의 충절과 문맥이 천세에 빛났건만 왕조의 성쇠와 세월의 이끼로 이제는 그 큰 기둥 흔적조차 희미하더니 한 평생 회주 성지 땅 기운 지펴 온 지극한 한 후손 있어 사직 지신으로 숭앙 받는 선조의 빛난 행적을 새겨 여기 큰 비를 세우도다.

 

二0十八년  戊戌  八월  일
高麗大學校 十七代  總長  全州  李基秀  謹撰
聽溪公十一代孫  滉良  獻誠
長興魏氏  都門會  謹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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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공 鏡 등 7현조 사당 懷州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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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당 栢山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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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懷州祠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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