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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곡 위찬호 초대 대종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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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종회 회장을 역임하신 위찬호박사님께서 2018년 9월 9일 밤 10시 45분 노환으로 별세하셨기에 알려드립니다.
*발인 : 9월 12일(수) 06:00
*빈소 :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실(02-3010-2000)
송파구 올림픽로 43길 88
*장지 : 순천 선산
장흥위씨대종회 회장 위자형

 

 

                汎谷 公(휘 찬호) 대종회 초대회장 조문
 
 2018년 9월10일 서울 아산병원 302호에 차려진 빈소를 조문했다. 범곡 公은 89世를 향수하셨다. 미망인 (장윤선)과 1남(안균) 2녀(수경, 수정)자녀를 비롯한 많은 일가친지와 수많은 지인들이 함께 고인을 애도했다. 발인은 9/12이며 장지는 고향인 순천 선영이다.

 장흥위씨 문중에서는 송담(자형)대종회장을 비롯 정암(승렬)재경지회장, 선암(옥량) 청장년회장, 후곡(형윤)문예협회장, 종훈, 모사(순섭)부회장, 청연(두량)사무국장, 총무단(성현, 유치 성진,이환, 선원 성진, 윤기 등)이 함께했다.

 대종회에서는 승렬 재경지회장을 단장으로 하고 예하에 옥량 청장년회장을 팀장으로 하여 장례지원단을 운용하기로 하고 내일(9/11)도 총무진이 몇 개 조를 짜서 돌아가며 빈소를 지키기로 했다. 또한 후곡 위형윤 교수는 고인의 별세를 안타깝게 여겨 손수 애도시를 지어 영전에 올렸다.

 또한 도문회장 위인환, 대종회장 위자형, 재경지회장 위승렬, 관북지회장 위성열, 인천지회장 위성, 위성호 신한은행장께서 조화를 보내 마지막 가시는 고인을 애도했다.

범곡 公은 33世, 영장공派, 1930년 순천출신으로 육군대령 예편 후 학원사업에 투신하여 자수성가했다. 우리 문중에서는 재경지회장 14년, 대종회 초대회장으로 18년간을 재임하며 문중중흥의 기틀을 다졌다. 이런 업적으로 회주사 경내에 공적비가 세워졌고 보정 장흥위씨요람(2018년)과 종보(23호)에 그 업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벽천)
 
범곡 위찬호 박사 애도시

아! 슬프다....
범곡 위찬호 박사께서 2018년 
9월 9일 23시 89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길로 
외롭게 홀로 가셨으니 이제 이 세상
어디가서 그 모습을 뵈오리오!

조부때부터 위가 명당자리를 찾아 
봉두에서 구례 토지면으로, 황전면 
뒷산 봉두산 정기를 받아 죽동에
자리 잡고 태어 나셨으니 
장흥 위가의 전설을 남기셨도다.

송치재를 넘어 선진영농을 위해 순천농고, 국민대, 고려대, 미국 아메리칸대학 교육학박사 학구열과 6.25사변 때는 전선에 참전 장교로 영관급 대령으로, 전쟁 영웅 공로로 
화랑, 충무무공훈장을 받으셨다.

군복무 후 산업인재양성에 힘쓰셔서 
전국학원총연합회를 조직하셨으며 
배우지 못한 많은 청소년들을 교육하여 
삶의 자리를 마련하여 사람답게
살게하는데 혼신을 기울린 어른이시다. 

범곡 선생은 나라에 봉사 할 수있는 
힘은 숭조애족정신 드높힘에 있음을 
깨닫고 문중의 번영과 발전, 대종회를 
창립하여 많은 업적을 후손에게 
남기셨으니 그의 숭조애족정신은
영원히 빛나리라!  찬란히 빛나리라!

               무술년 구월 십일
                후곡 위형윤 올림
 
 

謹輓汎谷魏燦鎬會長韻(근만범곡위찬호회장운)

 

 

汎翁氣魄百年莊 (범옹기백백년장)

聞訃壽星俄失光 (문부수성아실광)

 

 

少率軍團防國土 (소솔군단방국토)

壯任宗會振綱常 (장임종회진강상)

 

 

養成護士治痾愈 (양성호사치아유)

供奉老親侍藥湯 (공봉노친시약탕)

 

 

遐邇弔喪哀且誦 (하이조상애차송)

功名蔚藹永流芳 (공명위애영유방)

 

 

범곡어른 기백이 평생동안 씩씩하더니

부음 듣자, 남극수성이 문득 빛을 잃네

 

 

젊어서는 군단 이끌고 국토를 지키고

장년엔 대종회 맡아 삼강오상 진작해

 

 

간호사 양성하여 질병치료 기여하고

노부모 공양할 때 약을 맡아 끓였네

 

 

원근 사람들 문상 슬퍼하고 칭송하니

공적과 명예 성대하여 기리 전하리라

 

 

戊戌 九月 十日 族孫 魏昌復 謹哭輓

魏昌復 (약력: 國家文化財 第85釋奠大祭履修者. 서울東洋文化硏究會회장 성균관儒道會 衿川支部長. 성균관유도회 서울市本部 감사, 부회장. )성균관典禮委員會 부위원장)

 

 

< 추모시, 부제: 부치지 못한 편지 >

                                                  옥로 위성유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
가야 할 종착역이 저 하늘 어디쯤인 걸,
당신과의 연이 여기까지라는 걸 알면서도
당신 떠나는 길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
애도의 향불 하나 피워놓았을 뿐,
차마 눈물 한 방울 떨구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진정 어찌 당신을 보내야 할지,,,
이별이 두려워
이승과 저승 사이가 멀고도 멀어
차마 당신을 놓아드릴 수 없었기에 그리하였습니다.

어찌 이토록 빨리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까?
위문을 위해 할 일이 아직 태산 같은데
당신의 따스한 손길을 그리워하며
당신을 못 잊어 애타게 보고파 하는데,,,

어찌 이토록 우리 마음을 붉게 멍들게 하시고 황망히 떠나셨습니까?

범곡이시여!
위문으로 통하는 길목마다, 당신의 흔적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위문을 사랑한다, 말로는 누가 못할까요?
당신은 행동으로써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신 선구자이셨습니다.
당신의 헌신적인 마중물이 있었기에
우리 위문은 막힌 수맥을 뚫고 대대손손 흐르고 흘러, 광야를 흥건히 적실 수 있었습니다.

낙엽처럼 뿔뿔이 흩어진 우리들을, 대종회 탄생을 통해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학구열에 불타는 새싹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도 헌신하셨습니다.

이뿐입니까!
위문의 소식을 널리 알리고자 위씨 종보를 발행하셨고
선조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회주대제, 종친 참배 전국화에 힘써 주셨습니다.

그 업적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위문만을 위한 열정과 사랑으로
오직 위문을 위해 걸어오셨던 당신의 고귀한 발자취를 감히, 누가 밟고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신이 떠난 빈자리
어찌 후손들이 다 메울 수 있겠습니까?
위문에 대한 열정의 깊이가 바다와 같고
사랑의 뜻이 하늘처럼 드높았던 당신이여,

차마, 영원한 이별이 무서워 제 마음 언저리에 부치지 못하고 간직한 추모의 편지를 이제 곱게 접어 당신께로 띄워 보내려합니다.

저 하늘 어디쯤인지 모를 그 곳에서
저의 꼬깃꼬깃해진 글을 읽어보시거든,
늘 그랬듯이 5월의 태양이 저 뒷산으로부터 기지개를 켜는 그 날,
한 마리 새가 되어 회주대제에 훨훨 날아오시어
함박웃음으로 반갑게 후손들을 맞아 주소서.

'영원한 이별은 없다 '는 믿음 하나로
당신께서 위문을 위해 남기신 숭고한 업적을 길이 보전하며
우리는 영원토록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범곡이시여!, 이제 편히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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