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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감국사(圓鑑國師)
원감국사는 고려시대 장흥을 대표할 인물이다. 국사는 고종(高宗) 13년(1226) 병술(丙戌) 11월 17일 장흥읍 동동리에서 참의정승(參議政丞)을 역임한 아버지 소(紹)와 어머니 원방대부인(原邦大夫人) 송씨(宋氏)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원개(元凱)이며, 출가한 후의 이름은 충지(沖止) 또는 법환(法桓), 자호는 복암(宓庵)이다.
국사는 나서부터 매우 총명했다. 고종 21년(1234) 9세 때 취학, 경서(經書)와 사류(史類) 등을 독파해 고종 29년(1242) 17세에 사마시(司馬試)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고종 31년(1244) 19세 때는 예부시(禮部試)에 장원급제 했다. 동생 문개(文凱)도 이듬해(1245)에 역시 장원급제하고, 막내 동생 신개(信凱)도 예부시에 급제했다.
그는 급제한 후 영가서기(永嘉書記)로 관직에 첫발을 내딛었다. 관직생활을 하던 중 일본에 봉사(奉使)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다 관직생활 10년째인 29세 되던 고종 41년(1254)에 세속의 옷을 벗고 불가에 귀의, 원오국사(圓悟國師)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승려의 길을 걸었다. 승려생활 중 1275년 50세 때 원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국사는 스승 원오국사의 뒤를 이어 충렬왕 12년(1286) 송광사 6세사주가 된다.
'장원봉(壯元峯)'과 위가를 가리키는 상징인 승려 즉 '중'이라는 전설과 속설은 국사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국사 형제 3분이 연이어 장원·급제하자 당시 장흥부민(長興府民)들이 마을 뒷산의 쌍봉 중 큰 봉우리를 장원봉이라 하고, 작은 봉우리를 거말봉(居末峰)이라 일컫는 것은 여기서 연유한 것이다. 장흥군문화원은 이 같은 전설을 길이 기념하기 위해 2007년 마을 어귀의 언덕에「장원봉유래비」를 세웠다.(출처 : 원산 위정철 카페)
위성동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