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7 21:16
어렸을때는 위씨라는 성씨가 보기드물었기때문에 가문에대해 별 관심도
없었고 그저 중국에서 넘어온지 얼마안된 별볼일 없는가문이라 생각하다가
고등학교때 국사 선생님의 한마디에 다시 저희가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한마디는 "어! 위씨네 전라도에서 제일가는 양반가문인데 다들 똑똑한데 너도
공부 좀 해라"였습니다.
그래서 본관은 어디고 파는 어디고 저의 항열은 뭐고 족보에 올라있는 이름은 무었인지
궁금해서 물어봐도 제대로 아는분들이 없더라구요.
현재까지 알아낸것은 항열이 량자항열이고 32대라는것 그리고 몇대조 할아버지신진
모르겠으나 본관에서 여천으로 내려오셔서 뿌리를 내리셨다고 하더라구요.
큰집에 가봤더니 사촌형님은 얼마전에 족보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훑어 봤더니 6.25때 돌아가신 큰아버님도 안올라 계신고 같고 저희집안도 저희형
제들은 아직 안올라있더군요.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 몇달후면 저도 아들이 태어나는데 이름을 항열대로 지으려고 합니다만
아는게 없다보니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와 제 동생 저의 아들 모두 족보에 올리고 족보또한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리고 6.25때 돌아가신 큰아버님도 족보에 안올라계시다면 저희가 족보에
올려드릴순 없는지요(총각때 돌아가셔서 자손이 없어요)
여천에는 산수(山水)와 봉두(鳳頭) 두곳에 장흥 위씨가 살고 있습니다. 산수는 단종 또는 세조 때 용(庸)자 할아버지가 정착해서 오늘에 이르고, 봉두에는 임진왜란 이후 부장공 후손이 살고 있습니다. 귀하는 아마 산수파에 속한 듯합니다. 32세면 항렬이 량(良)자 입니다. 그리고 33세는 환(煥)입니다. 량이나 환은 끝에 씁니다. 큰 아버지도 족보에 오르지 않은 것은 소식이 닫지 않아 비롯된 결과입니다. 우리 위씨는 1759년, 1842년, 1883년, 1916년, 1957년, 1972년, 1999년 각각 족보를 발행했습니다. 앞으로 종이 족보는 만들지 않고 전자족보를 만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