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7 05:01
고향마을인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588-1번지 내동 입구, 방촌유물전시관 앞 소나무 숲속에는 전라남도 지정 기념물 제 134호 〃방촌리 지석묘군〃이 위치한다. 이곳에는 90여기의 지석묘가 있다.
지석묘(支石墓)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산물(遺産物)로 일명 〃고인돌(괸돌)〃 이라고 부른다. 당대 사회지도층, 지배층의 무덤으로 한반도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지석묘가 존재하고 있다. 하단부 받침돌 기둥이 높은 북방식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강화군 부군리 지석묘가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남방식 지석묘는 하단부 받침돌 기둥이 아주 낮거나 없는 형태의 지석묘를 말한다. 고창군 죽림리와 화순군 대신리 등이 대표적 지석묘군 이다.
장흥군 지역에서는 200곳에 2,000여기가 분포하고 있다. 이중 방촌마을 지석묘가 대표적이다. 방촌유물전시관 앞 숲속, 등전 마을회관 뒤 전(田), 다산재 주변 전(田), 새터 삼괴정 내, 새터 앞 보밭등(寶田嶝) 전(田), 산저마을 전(田), 호산(범산) 뒤 전(田)과 산, 호동(쇵골 번덕지) 앞 전(田) 등에 380여기가 산재(散在)하고 있다.
특히 성주골 입구에 있는 지석묘는 세계 최대의 크기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촌마을에 지석묘가 집단적으로 분포함은 청동기시대에 이 지역이 중요한 지배층의 생활터전 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전라남도 지정 기념물 제 134호 방촌유물전시관 앞 지석묘군이 위치한 임야(1,200평 가량)는 현재 장흥위씨 안항공파 반계종중 소유다. 일부 지석묘는 일제강점기 때 도굴(盜掘)하여 기단 아래가 훤히 드러난 것을 보았었다. 지난날에는 내동(동산밑)마을 쪽에서 유물관 앞 도로까지 연결된 마을길 농로(農路)가 있었으나, 지석묘군을 보존키 위해 정비하면서 마을길을 매웠다.
방촌마을에서는 이곳을 〃상여(喪輿)집〃이라고 불렀다. 2000년 이전(以前)에는 집에서 임종(臨終)하고 3~5일 장례(葬禮)를 치르면서 로제(路祭)를 지낸 일정한 큰 공간의 장소였다. 밤길에는 이곳과 벅수골 석장승 앞을 지나가기가 으쓱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내동(등전·동산밑·윗골·내동) 사람들은 집에서 아이가 출생하거나, 소가 송아지를 낳을 때, 정월 보름날 벅수골 석장승 등에 액운(厄運)을 차단키 위해 금토(禁土)를 놓을 때 이곳의 황토(黃土)를 사용했었다. 1970~1980 중반년에는 도로변 한쪽에 길이 30m 가량, 깊이 1m~2m 가량의 방공호(防空壕)를 만들어 예비군 훈련에 사용했었다. 이후 지석묘군을 보존키 위해 정비하면서 모두 매워 현재는 방공호 흔적을 볼 수 없었다. 또한 이곳은 어린시절에 어머님이 관산장(3,8일)에 갔을 때 언제 오시려나 하면서 기다린 추억의 장소로 간직하고 있다.^^ 栢江
방촌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위문의 세거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