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1 21:46
고향 방촌마을 탑동 3층 석탑은 탑동(탑골)마을 논 가운데 있던 탑(塔)이다. 1992년 도난당하여 현재는 기단(基壇)만 남아 있다. 이 탑(塔)으로 인하여 마을 이름이 탑동(塔洞)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탑은 총 높이가 170cm이고, 탑의 최대 폭이 73cm로 아담한 3층 석탑이다. 규모는 작지만 체감율이 좋고 옥개석(屋蓋石) 모양이 경쾌(輕快)하여 친근감이 든다. 다만 조각이 섬세하지 않고 상륜부 보주(寶珠)의 훼손이 심하다. 1747년에 간행된 장흥읍지(丁酉誌) 고읍방 조적조(組積造) "사정고탑(射亭古塔)은 방촌 서쪽 밭 가운데 있다. 옛 절터다." 라는 기록이 있으나 어느 때 어떤 규모의 사찰인지 확인할 수 없다. 탑의 형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3층 석탑 基壇>
<탑동마을 입구에 세운 표지석>
-사정고탑(射亭古塔, 탑동 3층 탑)-
이탑은 탑동 뒷등 절터로 추정되는 밭에 있었던 것을 일제가 침탈하기 위해 관산초등학로 이설하였다. 이때부터 흉년이 들고 마을에 변고가 있어 민심이 흉흉하자 탑을 되가져와 마을 어귀 논 중간에 세워 놓았으나 경작에 어려움이 있어 마을 입구 길가로 옮겨 놓은 일리 도난의 단초가 되어서 1992년 5월 7~8일 밤에 기단부만 남았으며 이에 마을 주민의 뜻을 모아 2008년 7월 23일 마침내 복원하였다. 원 탑의 규모는 작지만 체감솔이 좋고 옥개석 모양이 경쾌하여 친근감이 있었으며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로 추정된다.
탑동·호동 마을 주민일동
(표지석에 沙亭古塔이라고 표기되었으나, 오기로 射亭古塔이 타당함.)
사정고탑(射亭古塔) 탑동의 3층석탑이 도난되기 前에는 위성천 소유의 논 가운데 위치하였다. 과거에는 인근 한쪽 위치한 위수환 소유의 동산에 군사(軍士)들이 활을 쏘는 훈련 장소였으며, 정자가 있었음이 傳해져 "射亭古塔"이라고 한다. 2008년 탑동·호동 주민들은 뜻을 모아 천관산에서 채석(採石)한 화강석으로 일금 700만원을 들여 탑을 복원하였다.
탑동효종(塔洞曉鍾)은 방촌팔경 중, 제 5경에 해당한다. 이는 "천관산 주변에는 89개 암자(庵子)가 있었는데, 이중 탑동에 있던 암자의 새벽 풍경소리가 듣기에 아주 좋다."는 표현이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탑동(탑골) 뒤의 암자(사찰)는 지석묘(괸돌) 주변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실제 80여년 前만 해도 민가 4~5가구 있어 주민들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깊은 유래가 傳해지고 있는 탑동마을의 상징인 3층 석탑의 하루빨리 귀환(歸還)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栢江
참고 문헌 : 장흥 방촌
자문 : 위수환, 위 성
◇ 방촌팔경 ◇
•제 1경 동산제월(東山霽月) : 장천재에서 봤을 때 비갠 뒤 동쪽 동산 위로 솟아오르는 달의 아름다움.
•제 2경 계동춘풍(桂洞春風) : 계춘동에 항상 봄바람처럼 훈훈한 바람이 인다는 아름다움.
•제 3경 상잠만하(觴岑晩霞) : 상잠은 내동과 계춘동 마을 뒤에 펼쳐져 있는 산으로, 상잠산에 늦은 허리 안개(저녁놀)가 둘러싸여 잇는 아름다움.
•제 4경 호동초적(壺洞樵笛) : 장천동, 쇵골 일대에서 나무를 해오며 부르는 초동들의 아름다운 피리소리. 방촌에서는 피리를 흔히 촐래라고 하는데, 두 개의 피리를 한입으로 부는 쌍촐래 소리는 더한층 아름답다.
•제 5경 탑동효종(塔洞曉鐘) : 천관산 주변에는 89개 암자가 있었는데 탑동에 있던 암자의 새벽 풍경소리가 듣기 좋다.
•제 6경 성동폭포(聖洞瀑布) : 성주골에 비가 내리게 되면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길이는 20m 정도에 이르고, 또한 겨울철에는 폭포수가 얼어 있어 얼음골이라 부른다.
•제 7경 도곡귀운(道谷歸雲) : 산저 마을 옆 도곡에서 넘어오는 석양녘의 구름은 사뭇 아름답다.
•제 8경 금당귀범(金塘歸帆) : 조그만 돛을 단 조각배가 금당도로 돌아가는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