栢江(성록)위원의 별명은 문중해설가(Wi-famliy Expounder)이다. 그것도 '탁월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해설가의 사전적인 의미는 '상세하게 설명하는 사람'이다. 풍부한 지성과 문중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겸비되어 지어진 별칭이다. 백강위원의 지음(知音)인 野雲(위이환) 위원은 '栢江은 초등학교시절부터 족보에 대해 문중어르신과 대화를 하는 것을 자주 본 적이 있다'라고 평(評)했다. 이런 栢江위원의 박학다식은 장흥위씨 문중 문화의 마을 방촌이라는 세거지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이다. 여기에다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문중역사공부에 투자한 결실이다. 그래서 매년 수련회 때마다 문중해설가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에도 첫째날, 둘쨋날 저녁 뿌리 공부시간과 3일간의 옥외 탐방교육에서 유적, 유물에 대한 문중해설가(Wi-famliy Expounder)로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또한 근 3年만에 다시 찾은 충렬공 묘소를 비롯한 여러 재각, 고택, 존재공 동상, 정남진, 장원봉, 등지에서 찌는 듯한 더위에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서도 수련생을 위해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는 사명감이 충만했다. 지성과 열정으로 다져진 백강위원의 해설에는 막힘 없이 시원시원하다. 연대, 호, 선조 등 숫자부터 재각, 고택, 지명 등 세세한 역사까지 장흥위씨 문중박사라 해도 아무 손색이 없을만큼 출중하다. 문중해설가라는 닉네임에 걸맞는 능력을 갖추었다.
앞서 栢江(성록)위원은 틈틈히 시간을 할애하여 연구한 두편의 논문을 제22호(2016년)와 제23호(2017년) 종보에 발표했다. 바로 그것은 문중편액, 선조의 교지에 대한 것이다. 많은 종친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수련회 기간중 재각과 고택탐방 때 편액은 꼭 설명해야하는 필수가 되었다. 또한 방촌유물전시관 2층에 전시된 교지도 마찮가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말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다듬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 구슬 자체만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종친들의 집에 흩어진 교지는 한낱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栢江(성록)위원은 이것을 간파했다. 그래서 전국에 흩어진 편액과 교지를 종합하고 고증분석하여 시대상황에 대한 문중선조의 역할을 재조명했다. 대학(大學)에서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글귀가 있다. 栢江(성록)위원은 편액과 교지연구를 통해 門中 중흥의 기초작업인 격물치지(格物致知)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그래서 큰 성과를 이루었다. 그 성과는 후손에게 전해져 오랫동안 회자(膾炙)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제22회 수련회는 문중 어르신께서 21년간이나 이어온 전통을 깨트린 것이 한가지 있었다. 위험(Risk)은 극복하기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栢江(성록)위원의 지론에서 시작되었다. 21회까지 줄곧 8月 중순경에 치렀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7월 21일~23일로 앞당겨 치런 최초의 수련회였다. 그 이유는 찌는 듯한 무더위를 피해보자는 것이 첫번째 취지였다. 그리고 장마가 끝난 이후는 장천재 앞 냇가가 말라 무더위를 식히려면 7월 중순쯤으로 수련회를 앞당겨야 했다. 이 두가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장이 栢江(위성록)위원의 제안이었다. 물론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8월 개최는 21년간의 전통이고 대학교는 방학을 하지만 초, 중, 고교는 하계방학 전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栢江(성록)위원의 뜻이 반영되어 진행되었다. 보름쯤 앞당겨 치룬 수련회는 날씨도 작년에 비해 시원했고 장천재 앞 시냇가엔 흐르는 물도 많았다. 더위에 쓰러지는 것을 염려한 작년에 비해 한결 마음이 편했다. 위험(Risk)은 극복하기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栢江(위성록)위원의 주장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수련회 개최시기의 변경은 전략적인 성공이었다. 현실상황을 고려하여 전통은 수정되어야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淸蓮(두량)사무국장은 학생참가자를 10名에 두고 수련회를 추진했다.
이에 반해 栢江(위성록)위원은 1.5배인 15名선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이 너무 적으면 본향 장흥에서 일반인에 의해 뭍혀 버리는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수련회라는 본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급기야 창복(35世, 판서공파, 고3), 태석(35世, 판서공파, 대1), 경복(35世, 판서공파) 세명을 간절히 설득해서 수련회에 참가하도록 권유했다. 그래서 그나마 이번 수련회 학생은 14名이 수료증을 받을 수 있었다. (벽천)
◇위 사진은 충렬공 묘소, 아래 사진은 대전뿌리공원, 옥내 뿌리공부시간, 장원봉유래비에서.(사진제공 : 위상복 연구위원, 위성암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