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수련회 때 어린 남매가 나란히 손을 잡고 나타났다. 장흥읍에 소재한 청소년수련관에서 개최한 개소식에서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예린과 인서 남매였다. 특히 13살인 인서는 엄마 아빠를 떨어진 경우가 별로없어 눈물까지 보였다. 몹시 엄마를 떨어지긴 싫은 눈치였다. 엄마는 두 남매에게 근심스런 얼굴로 교육 잘 받으라고 신신 당부했다. 예린학냉은 세종시에 소재한 아름고등학교 1학년(2001년)이고, 인서학생은 아름초등학교 6학년(2005년)에 재학 중이다. 무더운 여름에도 아무 불평없이 큰 눈을 뜨고 2박3일간의 옥, 내외 교육에 성실히 임했다.
예린과 인서학생의 아버지는 대전지회 소속 위헌봉 종친이다. 1973년 충북 청원출신으로 충북대학교를 졸업 후 일본계 제약회사인 '한국다이찌산쿄사'에 근무 중이다. 특히 검도에 출중하여 학창시절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현재 세종시 아름동에 거주하고 있다. 헌봉종친은 장흥위씨지만 항렬과 종파를 아직 찾지 못했다. 여러 씨족문화연구위원과 대전종친회와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겨우 족보 말단에 조부가 항렬과 종파없이 기록되어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부친(위영모)은 충북 청원출신으로 선대가 이사를 여러번 다녀 혈족과 연락이 두절되어 버리고 말았다.
헌봉종친은 두 남매에게만은 핏줄의 고귀함을 어릴 때부터 일깨우고 선조의 발자취를 심어주기위해 고심했다. 아내와 여러번의 대화끝에 어린 두 남매를 하계수련회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냄매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날씨는 무덥고 부모를 떨어져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뿌리공부는 빠를수록 좋다고 판단했다. 뿌리는 명예나 금전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서 후손에게 전해야 하는 의무이다. 부모의 바램대로 어린 두 남매는 퇴소식 때 2박3일 동안 선조의 흔적을 찾아 볼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많은 위씨들과 함께해서 즐거웠다고 소감을 말했다. 헌봉종친의 소중한 결단으로 피의 고귀함을 조금이나마 자녀에게 심어주는 전환점이 된것이다. 이는 지혜로운 문중 어르신께서 22년간이나 지속해온 하계수련회의 개최목적에 부합되는 것이다. (벽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