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장흥위씨 수련회 마지막날(7/23) 본향 장흥의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뜨거운 열기를 힘차게 발산하고 있었다. 쬥쬥 내리쬐는 태양은 이글거리며 온몸을 땀으로 적셨다. 숨쉬기 조차도 어려울 정도였다.
'아빠 도저히 힘들어서 못올라 가겠어요.
정말 더이상 못간다니까요!
더워서 미칠 지경이라니까요!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얼마남지 않았어.
원감국사님 삼형제는 장원급제를 모두 하셨다는데 그 기를 받고 가야지.
뒤돌아 봐!
할아버지도 뒤따라 오시잖아'
라고 하는 대화가 살포시 들려왔다. 아빠와 아들은 한손은 서로 잡고 다른 손으로는 연신 수건으로 땀을 훔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빠는 12살 아들의 손을 잡고 끌어주기도 하고 밀어 주기도 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멀찌감치 뒤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손자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장원봉을 오르는 이 장면의 주인공은 바로 성열 관북지회장 가족 삼대이다. 장원봉 정상은 2키로 남짓 20분정도의 봉우리지만 습기가 많고 잡목과 대나무가 빽빽히 우거진 무더운 날씨라 성열지회장의 손자 서련학생은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라 쉽지않은 코스였다.
이번 수련회 때 성열(37세) 관북지회장의 아들(지현, 38세,1974년)과 손자(서련, 39세, 2006년) 삼대가 참석했다. 2박3일간 삼대가족은 처음부터 끝까지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다양한 옥외 유적지 탐방 및 옥내 뿌리공부에 진지한 자세로 열중했다. 이는 아들, 손자에게 뿌리의 소중함과 고향의 그리움을 전수하려는 듯 했다. 멀리 함흥 고향에는 남북이 가로막혀 갈수 없지만 본향 장흥의 뿌리를 후손에게 전하려는 성열지회장의 깊은 뜻을 아들과 손자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성열지회장은 1946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37세, 봉규파(홍업파)로 관북파 중에서 가장 많은 종친들이 이 파에 속한다.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와서 경찰공무원으로 재직 중 장항고 설립자이신 관북파 위준혁 이사장을 만나 줄곧 장항고에서 행정실장으로 근무했다. 또한 김천 운곡 바로 옆동네인 송곡출신의 덕성과 미를 갖춘 아내를 만나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 2016년 위재균 회장의 뒤를 이어 18대 관북지회장에 취임하여 관북파의 수장이 되었다. (벽천)
◇위사진은 장원봉유래비, 아래사진은 영랑생가, 뿌리공부시간, 장원봉 등산 중 아들을 잡고 정상을 오르는 모습 등(사진 제공 : 위상복 위원, 위성암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