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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효열부(孝烈婦 선산김씨(善山金氏)의 비(碑) / 栢江 위성록

 효열부(孝烈婦) 선산김씨(善山金氏)의 비(碑)는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654-2번지 장흥대로 국도변 장흥위씨 세장비 건너편에 위치한다. 비문(碑文)은 번역(飜譯)되지 않아 차후 게재키로 하고 우선 주요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비의 규모는 총 높이 170cm, 비신 폭 42cm, 비후17cm이다.

선산김씨 효열비 전면.jpg

선산김씨(계산할머님) 장흥군 용산면 안암리 척산마을에서 부친(父親) 김기열(金璣烈)의 3남2여 중 장여(長女)로 1879년(?)에 태어났다. 1897년경 남편 자욱(子旭) 위계일(1880~ 1908)과 혼인하였다. 남편이 29세 젊은 나이에 별세하니 수절하면서 시부모(媤父母)를 극진히 모시고 집안 화목을 다졌다. 길쌈으로 가산(家産)을 증식하면서 조상 삼세묘(三世墓)에 비(碑)를 세우고 묘소를 치장하니(아래 사진 참조) 향리(鄕里)에서는 여장부(女丈夫)라고 찬사(讚辭)가 자자함에 장흥향교에서는 효열부 표창을 했다. 본인의 출산이 없으므로 가계(家系)의 계승을 염려하여 재종질(再從姪) 덕은(德隱) 위치량(1900~1942)의 차남(次男) 위주환(1927~2010)을 4살 때 사전 입양(入養)시켜 가업(家業)을 잇게 했다. 1941년(辛巳) 문의(門意)가 제발하여 효열비를 세웠다. 

선산김씨 효열비 1.jpg

선산김씨 효열비 2.jpg

선산김씨 효열비 3.jpg

선산김씨 신동리 묘소.jpg

1951년(辛卯)에 별세하니 묘소는 관산읍 신동리 산 120번지 안적봉 선영(先塋) 아래 공영쌍조(公塋雙兆)다.

 

양손(養孫) 동정(東亭) 위주환은 조모님의 고기한 정신을 기리고자 묘소에 비(碑)를 세우고 매년 기제사(忌祭祀)를 정성껏 모셔왔다. 증손(曾孫)은 위성운(1948년생), 위성중(1959년생)이다. 친정(親庭) 장손자 김형수(1926~ ?)는 경찰공무원에 투신하여 제32대 장흥경찰서장, 제39대 해남경찰서장, 제10대 광주서부경찰서장 등을 역임하였다.

 

비문(碑文)은 잠계(潛溪) 백형기(1881~1958) 선생이 찬(撰)했다. 선생은 장흥군 용산면 상금마을 태생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진수재(進修齋)와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후학을 기른 한학자로 “潛溪遺稿” 등 많은 글을 남겼다. 문하생(門下生)으로는 관산읍 평촌마을 태생 한국남종문인화가의 거목(巨木) 소천(小天) 김천두(본명 김석중 1928~2017)는 시(詩)·서(書)·화(畵) 3절(絶)로 널리 알려졌고 강와(剛窩) 위계형(1913~ ?), 만취(晩翠) 위계도(1926~1999) 등이 스승의 학풍(學風)을 이었다.

 

참고로 효열비에 새겨진 근찬(謹撰)연대를 보면 歲 重光 大荒落 雨水節이라 되어 있다. 중광(重光)은 고갑자(古甲子)로 육갑의 신(辛)에, 대황락(大荒落)은 사(巳)를 가리키며 우수절(雨水節)은 24절서(節序)중의 하나이다. 즉 신사(辛巳) 1941년 이른 봄이다.^^  栢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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