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해 오씨는 독립운동가 고 위석규와 혼인했다.
그러나 남편이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잃은 데 분개하여 망국의 한을 품고 만주로 떠나자 수절하며 자녀들을 훌륭히 기른 유덕을 기념하기 위해 자손들이 행적비를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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