存齋(1727~1798)公께서는 尤菴 송시열에서 屛溪 윤봉구로 이어지는 정통학맥의 嫡傳임을 자부했고 방촌에서 충청도 덕산까지의 千里길을 來往하면서 병계 윤봉구를 師門으로 정하고 性理學에 마음껏 精進하게 되었다. 존재공께서는 오직 科擧만을 염두에 두고 학문에 매진하였으나 당시 비리와 모순으로 얼룩진 과거시험장에서 더 이상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생각에 39세때 進士及第를 끝으로 과거에 대한 꿈을 접고 방촌 門中社會로 回歸하게 된다. (출처 : 원산 위정철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