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3 12:25
<위씨소식 제26호 위씨칼럼/2017.03.31>에서 발췌하여 올렸습니다.
원감국사 ‘비단가(臂短歌)’와 悲願
우리 종씨들은 때론 스스로를 비하한다. 그 단골메뉴가 “고관이 없다” 거나 “부자가 없다”는 것이다.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아니 맞는 말이다. 인물로 말하면 엊그제까지 장관은커녕 국회의원 하나 배출하지 못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다행이 이제 국회의원은 배출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부자는 여전히 메마르다. 대종회 창설을 주도한 범곡(凡谷) 전 회장은 모임에서 자주 구사하는 말이 있다. 우리 종씨 실업가 가운데 “50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사업체가 없다”고 한탄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대기업 반열은 물론 유망한 중소기업 하나도 우뚝 솟아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성지를 상징하는 백산재 지붕 한쪽이 무너졌다. 도문회는 작년 8월 30일 운영위원회를 소집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 결과 중수비용 1억 5천만원 중 30%의 자담금과 5대사업을 함께 추진키 위한 기금조성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종중과 종친회 등에 취지문을 보내서 동참을 촉구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모금실적은 고작 9백만원 정도라고 한다. 가히 창피할 수준임이 분명하다. 부자가 없어서 비롯된 현상일까 아니면 모금주체의 능력과 성의부족일까. 그도 아니면 종씨들의 관심부족일까. 이것저것 100보를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엔 마땅한 이유가 아니다. 관련해 원감국사의‘비단가’가 떠올랐다. 국사는 1231년 몽고의 침략과 피지배기를 살았다.
모든 전답의 소출은 그들의 동정(東征)을 위한 전비로 강탈당했다. 승려들의 식량을 조달하는 전답도 징발했다.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했다. 오죽했으면 국사께서“된장을 맛본지가 10년이 넘었다”고 신음했을까.
국사는 자신의 짧은 팔을 비유로 탄식했다. 소출을 빼앗기고 배고픔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색이 중생을 제도해야할 위치임에도 짧은 팔에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 것이다. 이를 필자의 비원이라고 할까. 무엄하다. 감히 누구와 비유하냐고 힐난을 받을 수도 있다. 지당한 지적일 수 있다.
단지 국사와 ‘비단가’와는 범위와 차원의 차이가 있다. 국사는 천하의 중생을 대상으로 당신의 짧은 팔을 주제로 삼았지만 필자는 스스로의 비원을 비교한 것이다. 스스로 설득할 수 없는 무딘 능력과 거액을 투척할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깝다는 의미이다. 그런 연유로 국사가 지은 ‘비단가’를 재음미해보자.
‘비단가(臂短歌)
원감국사
世人之臂長復長 세인의 팔은 길고 길어
東推西推無歇辰 동서로 구하기에 쉴 때가 없네
山僧之臂短復短 산승의 팔은 짧고도 짧아
平生不解推向人 평생 남을 향해 구할 수 없었네
大凡世上臂短者 무릇 세상에 팔 짧은 이에겐
人皆白首長如新 사람들의 모든 흰머리도 새롭나니
而況今昨始相識 하물며 어제오늘 서로 안 사이
肯顧林下窮且貧 숲 속의빈궁한 나를 돌아보겠나
我臂旣短未推人 내 팔은 이미 짧아 구하지 못하나
鳴呼安得吾臂化爲千尺與萬尺 아! 어찌 내 팔이 천자 만자나 되어
坐使四海之內皆吾親 앉아서 천하사람들 모두 나와 친하게 하리.
(圓山 위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