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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교육관장, 기산 위인백(箕山 魏仁伯)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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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교육관장, 기산 위인백(箕山 魏仁伯) 교수

 

기산(箕山)관장은 33세, 운암공파, 1947년생이다.

4남1녀(인백, 두백斗伯 1953년생, 상섭相燮 1956년생, 길섭吉燮 1959년생, 女 영숙英淑 1964년생) 중 장남으로 장흥 부산면 기동리에서 태어났다. 호(號)는 기산(箕山)이며 조선대 대학원 출신 법학박사로 1994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선대(先代)는 고조(高祖)는 열조(烈祚), 자(字)는 정렬(正烈), 호(號)는 죽헌(竹軒), 1797~1858), 증조(曾祖)는 성권(聖權), 자(字)는 성현(聖賢), 호(號)는 직암(直庵), 1848∼1933), 조(祖)는 계병(啓秉), 자字는 경지(敬之), 호(號)는 성암(誠庵), 1876∼1950), 부(父)는 석량(石良), 자(字)는 평화(平化), 호(號)는 침계(枕溪), 1923~1993), 배(配)는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기산((箕山)관장은 아내인 하동(河東) 정신숙(鄭信淑)과 사이에 공무원인 태경(台曔)을 두었다.

 

기산(箕山)이란 호(號) 광주권 인권 대부이셨던 홍남순 변호사가 지어주셨다고 한다.

故 홍남순 변호사(8학사孫)는 고서화와 풍수학에도 조예가 있었다고 한다. 홍 변호사와 5.18 민주화 투쟁하며 같이 옥고를 치르고 난 후에, 홍 변호사는 위 교수가 당시 갖은 강압에도 견뎌내고 절개를 꺾지 않는 것을 가상하게 여겨서 지어준 것이다. 위인백 교수는 장흥 부산면 기동(基洞)마을 출신이다. 기동마을은 장흥 예양강을 끼고 있으며 산자수려한 장흥팔경의 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예부터 올곧은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최근에는 박사들이 많이 배출된다 해서 박사마을이라고도 한다. 이를 아셨던 홍 변호사는 위 교수에게 기산지절을 생각하며 권하였다고 한다. 위 교수의 절개를 높게 평가하고 기동(基洞)마을을 중국 고사에 나오는 기산(箕山)과 흡사하게 본 것이다. 기산지절(箕山之節)은 굳은 절개나 자신의 신념에 충실함을 비유하는데, 여기서의 기산(箕山)은 요 때에 은자(隱者)인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숨어 살았던 곳이다. 소부는 요임금이 왕위를 주겠다고 함에도 거절한 이다. (제공 野雲 위이환)

 

역경을 승화시킨 5·18민주화운동 교육관장이다.

기산((箕山)관장은 민주화과정에서 고난의 역경을 민주로 승화시킨 간판인물이다. 법학을 전공한 광주여자대학교 교수로 정년을 맞기까지 대학행정처장을 역임하면서 후진양성과 대학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현재 광주광역시 5·18민주화운동 교육관장으로 재임 중이다. 5·18교육관은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에 소재하며, 건물은 지하1층, 지상4층 2,793㎡로 사무실과 강의실, 체력단련실, 기숙사, 휴게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관은 숭고한 5·18정신을 계승·발전하기 위한 교육과 홍보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시민참여를 적극 권장하는 열린 공간으로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를 슬로건으로 한다. 올바른 역사관과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교육함으로써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체험적인 교육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이 모든 교육과 사업들이 기산관장의 지도아래 계획되어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민주화와 인권(人權)의 기수(旗手)이다.

기산관장은 군부시절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매진하다 옥고를 치렀다. 그의 대표저서 ‘역사의 노를 저으며’는 2004년 출판사 심미안에서 출판했다. 334쪽 분량으로 5·18 광주민중항쟁의 주역으로서 도청을 사수하며 계엄군을 향한 죽음의 행진 등 생사를 넘나들었던 소회를 적고 있다. 또한 5·18항쟁동지회장을 역임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합리적인 노력을 전개하여 5·18특별법을 관철했다. 더 나아가 숭고한 오월정신을 기려나갈 (재)5·18기념재단을 설립한 과정 등을 24년 만에 털어놓은 역사적인 고백록이기도하다. 1970년대부터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해오면서 격변기에 필연적으로 구속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난날을 회고하고 있다. 광주의 아픔을 미래의 자양분으로 삼아 인류사의 교과서로 활용하는데 일조했으면 하는 고뇌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삶의 좌표를 포함하고 있다. 중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임어당(林語堂)의 말을 빌려 병고(病苦)와 옥고(獄苦)를 치르고 보니 비로소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에게 고통을 준다는 의미를 깨닫고 참 인생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양심수 기산관장의 눈물어린 고백이다.

대학 인권교재로 알려진 ‘민주사회와 인권’은 ‘도서출판 바로‘에서 2012년 출판했다. 274쪽의 분량으로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어 고문 끝에 의식불명이 되어 국군통합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어 3시간 만에 깨어났으며, 72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상무대영창과 광주교도소에서 겪은 인권유린을 기술한 체험담이다. 그동안 인권강연의 원고와 기고문을 정리했고 또한 인권운동을 같이 해온 동료들의 글도 함께 실었다. 결국 우리나라와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에 대한 참상을 해결하고자 하는 대안(代案)을 제시하고 있다.

기산((箕山)관장은 국제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즉,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 광주·전남본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권을 쟁취해낸 기성세대에 비해 인권은 당연히 보장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행여 인권활동을 소홀히 할까 하는 마음에서 ‘엠네스티운동 30년사’를 발행했다. 현재 한국인권교육원장으로서 우리시대의 가장 핵심인 인권의 가치를 교육하고 있으며 매년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는 인권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인권상을 시상하고 있다.

 

법학도가 시인(詩人)으로 등단하다.

민주 인권의 도시인 광주에서 평생을 치열한 저항 정신으로 정진해온 기산관장은 문학의 화두를 안고 문단에 데뷔했다. 2015년 현대문예 추천 문학상(시부문)을 수상했다. 기산은 ‘정남진 가는 길1’에서 ‘남도 끝자락 정남진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먼 꾸부렁길 그래도 굽이굽이마다 배꽃, 진달래, 코스모스 흐드러지고 언제부턴가 산마루의 풍차도 손 흔들며 인사하는 길. 동족상잔의 한 서린 역사 이젠 수몰되어 정든 이웃 흩어지고 갈 수 없는 자드락길 그래도 첫 사랑의 아련한 추억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할까 물어 볼 사람 없고 댐 물은 말이 없네. 초등시절 그리며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길 눈을 감아도 잡힐 듯 보이는 벼이삭 수수이삭 금물결 치는 평화의 낙원에서 90평생 앞산 수리봉에 해질 때까지 초생 달 등불삼아 살아오신 울 엄니가 반기는 내 고향’이라고 읊고 있다. 향토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토속적인 시로 보인다. 과거의 아련한 추억을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민주(民主)를 정착시키고자 아직도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다.

기산관장은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와 민주 두 축 중 한 축을 성공시킨 선구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권(人權)이 바로 민주화(民主化)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산관장의 노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2014년 4월부터 줄곧 광남일보와 인터넷신문인 뉴스나비를 통해 시론(칼럼)을 정기적으로 게재하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2014.05.20.)’ '헌법을 알아야 대한민국의 주인이 된다. (2015. 08. 04)' ‘정부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2015. 12. 22)’ ‘상대적 평등으로 공정한 정의사회를’(2016.04.26.)에서는 ‘대표적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을 보면 기본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법과 정의가 살아 있으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국가를 위해서 희생된 사람들을 최대한 예우하면서 소외계층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애씀으로써 세계 최강의 선진국이 되었다’라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개헌을 정치권의 당리당략에만 맡겨도 되는가. (2016.08.09.)’ ‘옛 전남도청은 광주정신의 상징이며 자존심,(2016.10.11.)’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과 명예혁명(2016.11.29.) 등의 글을 통해 현실정치에도 적극 참여하여 다소 진보적(進步的)인 정치관(政治觀)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 문중(門中) 젊은이들의 기본 책무는 기산관장을 높이고 존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하나뿐인 생명(生命)을 던졌기 때문이다. (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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