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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탐방기

장흥 내학마을 압해정씨 이야기 / 栢江 위성록

1.위치(位置)
장흥군 용산면과 관산읍의 경계인 솔치재를 넘으면 옴팍한 분지에 아담히 관산읍 소재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속에 학교(鶴橋 학다리) 마을은 70여호 중, 40호 이상 압해丁氏가 거주하는 집성촌으로 유학(儒學)을 숭상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내학마을 전경.jpg

큰 사랑으로 통하는 영호정(暎湖亭)이 화수정(花樹亭)이라 쌍액(雙額)하여 압해丁氏의 모연장수소(暮年藏修所)와 강학소로 운영하여 오다가 세월이 변화여 현재는 현대식 건물로 재건축 하여 경로당과 마을회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청학(靑鶴)이 집으로 돌아온다고 불리는 마을 앞동산은 1995년(乙亥) 천관산 도립공원 지정을 앞두고 외곽도로 개설에 의해 장흥대로(23번 국도)에 편입되어 그 흔적마저 희미할 뿐이다. 또한 마을 앞에 정산아파트(24호)가 들어서서 신구(新舊)의 촌락이 공존하고 있다.내학마을 표지판.jpg

2.형국(形局)
내학마을은 상잠산(觴岑山)을 등에 업고 송(松)·백(柏)·죽(竹)이 있는 곳에 화곡촌(華谷村)이라 이름 하였다. 1693(癸酉)년 공조참의공 익겸(益謙) 정건일(丁乾一, 1615~1694 )이 장흥위문의 연봉(蓮峯) 위동규(1600~? )에게 시집온 누님을 뒤따라 보성군 회천면 평장촌에서 현 학명재(鶴鳴齋) 아래에 입향(入鄕)하여 터를 잡아 압해丁氏의 내학마을 300년 역사가 시작되었다. 鶴이 북쪽을 향해 날개를 펴고 긴 목을 늘어 뜨려 황태수(송정 모퉁이) 들에 우렁을 파먹고 있는 형국(形局)이다. 鶴의 입이라 할 수 있는 동산에 수백년 된 적송이 어우러져 그곳에 鶴이 운집하여 살고 있었으며, 건너 마을인 죽교리 죽곡(남창) 마을로 고읍천을 건너가는 돌다리가 있어 학교(鶴橋)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傳한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좋은 산이나 명당은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막기 위하여 그 주맥(主脈)이나 목을 모두 끊고 정상에 쇠말둑을 박는 일을 할 때 이곳 鶴山의 鶴머리를 끊기 위해 관산읍 신동리로 가는 도로를 개설한다는 명목으로 鶴부리를 잘라 도로 개설을 하였다고 한다.

 

내학마을 화곡정.jpg

학교 마을 회관.jpg

화수정 기념비.jpg

이후 세속의 변화로 30년이 지난 1995년 정부 지원금 20,000,000원과 마을 주민들의 헌성금 등 45,000,000원을 들여 벽돌스라브 36평 건물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호정 팔경>         
觴岑曉月  暎湖晴風 : 상잠등의 새벽달과 영호정 연못에 맑은 바람이요

冠岳晴雲  蘇山暮雲 : 천관산의 비개인 뒤의 구름은 소산봉의 저문 구름과

竹浦歸帆  松嶺樵歌 : 죽청포구에 돌아오는 배로다 솔치재 초군의 노래 소리는

竹川晩釣  長川瀑流 : 대냇강의 늙은 낚시꾼과 장천계곡 폭포의 흐름이로다. 영호(暎湖) 정재옥(丁載沃)

<영호정 팔경 차운>
冠岳晴風  觴峯曉月 :  천관산 맑은 바람은 상잠산의 새벽달이로다.

鶴浦晩潮  馬島朝霞 : 학다리 갯가의 조수는 고마도의 아침 안개로다.

竹川漁笛  松嶺樵歌 : 죽천강 어부의 피리소리와 솔치재 초군의 노래 소리로다.

東汊歸帆  西巖懸瀑 : 동쪽에서 돌아오는 배들은 서쪽 바위에 쬐는 빛이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사성당(思成堂)과 학명재(鶴鳴齋)
관산읍 죽교리 65번지 상잠산 아래에는 영광丁氏의 사우(祠宇) 사성당(思成堂)과 강당 학명재(鶴鳴齋)가 위치한다. 사성당(思成堂)은 공조참의공 정건일(丁乾一)의 제실로 원래 1943년(癸未) 창건하여 관산읍 만련(柏洞) 마을에 위치하였다.

영광정씨 사성당.jpg

세속의 변화로 2005년(乙酉) 문재(門財) 일금 150,000,000원을 들여 현재의 학명재 좌측에 이축(移築)하여 공조참의공 정건일을 포함한 후손 98位의 위폐를 봉안(奉安)하고 매년 陰 10월 10일 향사(享祀)하고 있다.

 

영광정씨 사성당 백동묘각 상량문.jpg사성당 백동 중건상량문(思成堂 柏洞 重建上樑文)은 송포(松浦) 정노수(1877~1965) 선생이 찬(撰)하였다.

 

영광정씨 사성당 액호.jpg

액호 편액은 경북 성주 태생 극암(克菴) 이기윤(성산人 1891~1971) 선생이 썼다.

학명재(鶴鳴齋)는 교육의 전당으로 1846년(丙午) 창건하였으며, 찬연한 조상들의 학덕(學德)과 인격(人格)을 도치하는 산실(産室)이다. 1926년(丙寅) 문답(門畓) 100여두락의 자산으로 우람한 칠량와가(七樑瓦家)를 중건하였다.

 

영광정씨 학명재.jpg

영광정씨 학명재 중건상량문.jpg

영광정씨 학명재 액호.jpg

 

영광정씨 사성당 외문.jpg

중건상량문(重建上樑文)은 정의(正誼) 정민수(1870~1932) 선생이 찬(撰)하였다. 특히 이곳은 강헌(剛軒) 정병서(1856~1890) 선생을 이어서 송포 정노수 선생이 강학하여 유학(儒學), 예학(禮學)의 맥(脈)을 계승하여 왔다. 1990년(庚午) 조상을 숭배하고 후손을 위한 재각과 학당의 문화유산으로 재각의 문간과 부속 건물을 후손들의 헌성으로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액호(額號) 편액은 일몽(一夢) 정창한(1882~ 1953) 선생이 썼다. 외문(外門)은 승유문(承裕門)이라 명명하였다.

 

<학명재운 팔경>
詞人慾學昔人遊 : 글 하는 사람들이 옛 사람의 학문의 도(道)를 배우고자

此地起新一鶴樓 : 이곳에 학루(학명재) 하나를 새로이 세웠으니

寒土宜其行慥慥 : 청빈한 선비라면 마땅히 그 행실을 독실하게 하여야 하고

諸君何何浪悠悠 : 여기 여러 선비들이야 어찌 세월만 허송하며 한가로이 지내리오.

夕陽歸客休松嶺 : 석양에 돌아가는 나그네가 송령(솔치재)에 올라 쉬는데

細雨漁人下作洲 : 가랑비 내리는 물가에 어부는 고기를 잡는구나

雪月風花雲水趣 : 사철의 뛰어난 경치도 구름가고 물 흐르듯 재촉하고

主翁無事日閑愁 :  할 일 없는 노옹은 종일토록 한가로이 시름에 젖네.    
영광정씨 학명재운 팔경, 학명팔경.jpg
<학명 팔경>
甑岩新月 : 실바위 너머에서 떠오르는 달은    錦城落照 : 옥산 뒷산에 떨어지는 해로다.
松湖賣船 : 송호에서 고기 파는 배                    竹浦釣竿 : 죽청 포구의 낚시대
觴岑月鵑 : 상잠등에 두견새들                          細坪霜雁 : 가는 들에 서리 맞은 기러기와
冠岳暮雲 : 천관산에 저녁 구름은                     筆峯朝霞 : 소산봉의 아침 안개로다.

영광정씨 학명재 백회수.jpg

물암(勿庵) 백회수 선생이 고(稿)하다.

 

영광정씨 학명재 송포 산인 노수.jpg

송포(松浦) 산인(散人) 정노수(1877~ 1965) 선생이 고(稿)하다.

독립운동 국가유공자 동화(東華) 정종배(1913~1942)와 명원(明元) 정종철(1916~1948)이 정부로부터 1990년 8월 15일 국민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4.맺음말
죽교리 내학 마을은 압해丁氏 영광문중이 집성하여 유학을 숭상(崇尙)하여 忠과 孝를 문중의 이념으로 삼고 화곡정(華谷亭)과 학명재(鶴鳴齋)에서 서당을 운영하여 후학지도에 매진하였다. 섣달 그믐에 화곡정에서 제야( 除夜)를 하여 합동과세(合同過歲)를 하고 있다. 마을에 모든 운영기금은 문중 재산에서 충당하여 종원들의 세(稅)부담을 덜어준다. 근래에 정산아파트가 마을에 건설되어 타 지역 사람들이 입주하여 마을로 편입되므로 화합이나 모든 마을 행정체계에서 이원화 현상이 나타나 마을의 운영상황이 어려워 지고 있다고 한다.

                               

자문 : 장암(長菴) 정길태, 반계(泮溪) 정종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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