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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복, "사람과 함께 물들다"

2015.12.21 13:00

碧泉 조회 수:272


■위정복(35세, 운암공파, 1954년생, 장흥부산 구룡출신) 前동작구 부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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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정복종친께서 직접 쓰인 글입니다 / "사람과 함께 물들다" 저서소개(2014년발행)

"1981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신임사무관 근무를 시작하였다. 이듬해 3월부터 6년여간 충북도청 에서 근무하며 지역경제과장 등을 역임하였고 이후 미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공공경제학 석사를 취득하였으며 지난 1990년부터는 내무부에서 지방행정과 재정에 대한 정책기획업무 등을 5년간 수행하였다.

어느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영민하셨던 고조할아버지 (31세 휘 계선(啓善))는 많은 재산을 모으셨고 우리 집안은 부산면 일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천석꾼이 될 수 있었다. 많은 재물을 모으신 고조할아버지는 부산면 일대에 많은 토지를 사들였고,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고 는 부산면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말을 어르신들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조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재물을 물려받으신 증조 할아버지(32세 휘 원량(元良))는 그 재물을 불리려고만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베푸는 삶을 선택하셨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신 것인데,
지나친 재물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하시며 보리고개 때에는 곡식을 나누어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셨고,
많은 땅을 마을에 희사하셨다.

우리 집안 때문에 부산면에는 정말 보릿고개 때에도 굶는 사람이 없었고 주면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또한 지금의 부산면사무소 땅도 그때 증조할아 버지께서 희사하신 땅에 지어졌으며 그에 대한 고마움 으로 마을 사람들은 면사무소 주변에 공덕비를 세워 주셨다. 나는 그런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난 셈인데 큰 할아버지는 손이 없어서 우리 아버지를 양자로 입적시켰고 나는 그에 따라 장손이 되었다.

나는 전라남도 장흥출신이다.
장흥은 구석기 유적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고읍지로서 오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내달리면 도착하는 정남진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고, 차디찬 겨울바람에 지칠 때면 동백꽃 진달래 철쭉 등의 화려한 꽃들을 곳곳에 피우며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생동의 고장이기도 하다.

천관산 제암산 수인산 등 높으며 높으면 대로 낮으면 낮으 대로 수려함과 포근함을 주는 천혜의 자연 경관을 지니고 있고,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고 우리 나라 사찰인 보림사와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인 천관사 등의 문화유산을 품은 장흥은 굽이굽이 탐진강이 흐르며 부산평야 장흥평야 등 널따란 곡창지대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아름다우면서도 오랜 역사가 있었기에 예부터 우리 민족의 삶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시가 장르인 가사문학의 발원지로서 시향이 짙게 배어나는 문화의 고장이기도 한 것이다. 장흥의 명산 천관산은 호남5대 명산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신록의 신선함과 생동감,
은빛 찬란한 억새능선,
세상 온갖 형상들을 모아 놓은 듯한 기압괴석,
비단 같은 단풍,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멀리 제주도까지 바라볼 수 있는 탁트인 조망을 갖춘 명산 중의 명산인 것이다.

또한 천관산 주변에는 신라 통영화상이 창건한 고찰 천관사와 조선시대 실학의 기틀을 닦은 존재 위백규 선생을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수학한 장흥위씨 제각 장천재, 동백숲과 비자림숲으로 유명한 천관산 자연 휴양림 등이 있어 역사와 문화, 자연을 한 번에 보며 삶의 무게로 쌓인 스트레스를 사라지게 하는 힐링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장흥에 어찌 먹을 것이 빠지랴!
장흥은 메생이,
한우 된장물회,
숯불장어,
한정식,
돈차 등을 간직한 맛의 방주이기도 한데,
그 중에 최고는 장흥삼합이다"

 


■장흥위씨 3세 효열각(長興魏氏 三世 孝烈閣)
*. 소 재 지 : 장흥군 부산면 유량리
*. 관리주체 : 장흥위씨 종중
*. 규 모 : 건축물(목조기와 12㎡)
*. 비 : 위유권,위계선,열부양씨
*. 건립년대 : 1930년

[한집에서 3명의 효열이 나와서 계선선비의 아들인 원량(元良)이 세웠다.

이 비각은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贈 嘉善大夫 戶曹參判 : 從 二品벼슬) 위유권(魏有權)선비가 아버지 응조 (膺祚) 선비와 어머니에게 했던 효행, 아들 계선(啓善) 선비가 아버지 유권과 어머니 정부인 인천이씨(貞夫人 仁川李氏)에게 행한 효, 그리고 계선 선비의 손부(孫婦) 제주양씨(濟州梁氏, 梁會潮의 딸)가 남편 형환(衡煥)선비에게 행한 열행(列行)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에는 유권선비가 아버지 병환이 악화되어 입이 마른다고 꿩고기를 원하자 꿩을 구하기 어려운 때라 하 늘을 보고 울부짖자 짐승도 감응하여 솔개 한 마리가 꿩 을 잡아 마당에 떨쳐 주었고 어머님께서 위독하여 산삼 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고 하자 목욕재계하고 산신에게 빌어 한뿌리를 얻게 되어 병이 낫게 되었다고 전한다,

유권선비의 아들 계선선비도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묘옆에 초(草)막을 지어 3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호곡(號哭)하며 성묘 하고, 어머님이 병환에 계시자 대변을 맛보면서 병세를 살피는 등 자식으로서 해야할 모든 효행을 다하여 그가 묘 앞에 꿇어 엎드린 자리에는 풀이 돋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계선선비의 손부(孫婦)였던 제주양씨도 남편이 위독하여 백방으로 애를 써도 완쾌되지 못하자 자기의 남은 생명을 남편에게 이어준다는 뜻으로 스무살의 젊은 나이에 자결하여 남편의 병이 완쾌되어 장수하기 를 빌었다한다.]


■정복종친 先代

29세 휘 응조(膺祚)
30세 휘 유권(有權)
31세 고조부 휘 계선(啓善) 장흥위씨 3세 효열각(長興魏氏 三世 孝烈閣)
32세 증조부 휘 원량(元良) 장흥위씨요람 447

33세 조부 형환(衡煥)

34세 부

35세 본인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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