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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소개


대한민국의 정 남진 그곳에 천관산이 있다.
천관산의 특징은 하늘과 바다와 여러 곳의 땅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발 723m의 정상에 오르면 동시에 고흥, 완도, 강진, 영암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청명한 날이면 멀리 한라산도 보인다. 가히 명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천관산의 갈래는 이렇다. 지리산 줄기가 남서로 흐르다 순천 조계산을 지나 화순 동부 산언저리에서 헤어진다. 그러다 장흥 들판과 탐진강에서 꺾었다가 부용산을 발판삼아 불끈 솟은 산이 바로 천관산이다. 이 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천관산의 풍광도 일품이다. 주로 미문상화강암(微文象花崗巖) 지대라서 바위와 돌과 흙이 도홍색(桃紅色, pink)을 띄고 있다. 이런 기반암은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강한 부분인 토르(Tor)는 산꼭대기에 흔들바위로 남겼다. 그리고 떨어진 조각은 너덜(Tahus)를 이루어놓았다.


그래서 정상에는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즐비하다. 이름하여 종봉(鐘峯), 석선봉(石船峯), 관음봉(觀音峯), 선재봉(善才峯), 대세봉(大勢峯), 문수·보현(文殊·普賢峯), 당번(幢幡)·천주봉(天柱峯), 대장봉(大藏峯), 진죽봉(鎭竹峯), 석선(石船), 비로봉(毘盧峯), 중수봉(衆秀峯), 신상봉(神象峯), 홀봉(笏峯), 삼신봉(三神峯), 선인봉(仙人峯), 금수굴(金水窟), 석고(石鼓), 사모봉(紗帽峯), 연대봉 등 기묘한 바위들이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볼거리가 어디 그뿐인가. 연대봉에 올라 사방을 보라. 북쪽엔 월출산, 동쪽엔 팔영산, 멀리 남쪽엔 한라산의 백록담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바로 발 아래는 마치 고막조개를 엎어놓듯 다도해의 섬들이 옹기종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쪽빛 바다 물 또한 바로 이게 선경이 아닌가 여겨진다.


천관산은 고려시대에는 불교문화의 보고였다. 당시에는 금강산에서도 도를 터득하지 못한 승려들이 이곳에서 도를 깨우친 靈山(영산)이다. 지금도 천관사와 탑산사(塔山寺)가 남아 있다. 옛날에는 무려 89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어떤 연유로 없어졌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는 천관산이 ‘산세가 몹시 높고 험하여 더러 흰 연기 같은 기운이 서린다’고 했다. 산 이름도 천풍(天風), 천관(天冠), 지제(支提) 등이 또한 산신이 조선건국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흥양으로 귀양을 간 산이라는 희한한 사연을 간직한 산이다.


천관산은 우리 장흥 위씨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6세기초나 중엽에 선조께서 관산 당동(堂洞)에 자리를 정한 이후 방촌, 계동, 신기, 호동 등 위씨가 살지 않는 동네가 없다. 그러므로 천관산의 나무와 풀과 물로 삶을 영위하였기에 그렇다.


더구나 18세기 호남 실학의 대가인 존재공(存齋公)과 천관산과의 인연은 매우 깊다. 그는 어려서 장천재에서 수학하며 자랐다. 그래서 천관산에 자주 오르며 호연지기를 기르셨다. 존재공은 1780년 당신의 연치 53세 때 천관산의 모든 것을 수록한 지제지(支提誌)를 쓰셨다.


천관산에 대한 기록은 존재공의 지제지보다 전에 나온 것이 있다. 맨 처음에는 정명국사 천인의 천관산기’가 역대 명문장을 종합한 ‘동문선’에 실려 있다. 다음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장흥도호부조에 앞의 글을 간추려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659년 천관사에서 ‘지제산사적기’목판본을 제작했다.


그러나 이들 모든 기록 가운데 존재공의 지제지가 단연 으뜸이라고 한다. 그만큼 대상기록이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일이 현장을 답사한 후 글을 쓰셨기에 그런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 존재 할아버지의 지제지에 적힌 명소를 찾아 가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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