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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용산면 금곡길 59, 금곡마을 서북쪽 뒤 금화산(金華山 160m) 자락에 관수재(觀修齋)가 위치한다.

금곡 관수재.jpg
영광김씨 금곡파종중 소유로 묘각(墓閣)이 아닌 순수 후학 강학장소인 서재(書齋)이다.

원래 이곳은 종중에서 1602년(壬寅)부터 초옥 형태의 "金谷精舍"를 후학 강학소로 이용해왔다. 이후 1869년 후손 추려(秋旅) 김대원(1804~1869)이 주도하여 기와로 개축하고 노사(蘆沙) 기정진(1798~1879)이 건물의 명칭을 "觀修齋"로 명명하였다.

금곡 태생 김대원은 묵촌 태생 남파(南坡) 이희석(인천人 1804~ 1889), 여수시 거문도 태생 귤은(橘隱) 김 류(경주人 1814~1884)와 함께 호남지역 노사 선생의 문하생으로 알려진 큰 인물이다. 이런 근거는 노사집(蘆沙集)에 추려자서, 시문 등 다수가 전한다. 특히 여수 거문도 태생 만회(晩悔) 김양록(김해人 1806~1885), 김 류는 관수재에서 수학했던 인물이다. 거문도의 경주김씨는 김 류의 7대조 김호은이 유배로 정착하였다. 당대 김 류 등은 거문도에서 삼십포(현재 용산면 원등마을 앞)로 들어오는 중요 교통인 뱃길을 이용 관수재를 내왕했었다.

​관수재는 구당3칸에 양쪽 동서마루의 단포집 형태이며, 재직실 1동과 기타 부속 건물을 갖추고 있다. 지난날 서재로 이용되어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재원은 논 5두락과 밭 4두락, 임야가 있다.

금곡 관수재 경암.jpg

관수재 액호는 후손 경암(敬菴) 김한희(1869~ 1945, 장성군 태생)가 썼다.

경내에는 가선대부 만취정(晩翠亭) 김이창(1696~1784)에 대한 액호 편액 1점, 만취정서(序), 만취정기(記) 시운 편액이 소장되어 있다. 이는 원래 금곡 태생 김이창이 마을 내에 자호를 딴 만취정 정자를 세웠다 전한다. 이후 세월이 흘러 정자는 자연 훼손되어 철거되자 종중에서는 소장된 편액 3점을 관수재로 옮겨 소장해왔다. 오랜 세월로 훼손되어 가던 편액을 2004년(甲申)에 현재와 같이 새롭게 복원하였다.

금곡 관수재 만취정 조참판.jpg

만취정 액호는 조참판(?)이 썼다.

 금곡 관수재 만취정서 최몽암.jpg

만취정서는 참판 양오당(養吾堂) 최몽암(낭주人 1718~1802)이 썼다. 최몽암은 영암 태생으로 금곡 영광김씨의 외손이다. 1750년(庚午 영조26)) 식년시 병과(丙科) 1위로 합격하였다. 한성부우윤,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다.

금곡 만취정기 최시순.jpg
 만취정기는 기헌(寄軒) 최시순(해주人 1755~ ?)이 근고(謹稿)하다. 최시순은 화순 태생으로 금곡 영광김씨의 외손이다. 1783년(癸卯 정조7) 증광 생원시 3등 26위로 합격하였다. 1784년(甲辰 정조8) 정시 병과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삼군(三郡), 삼사(三司), 집의(執義), 실록편수관(實錄編修官)을 지냈다.
금곡 관수재기 기정진.jpg
 관수재기는 노사(蘆沙) 기정진이 1869년 6월 말에 썼다. 이를 2004년 새롭게 복원하였다.

 금곡 관수재 구사 구용.jpg

금곡 관수재 오륜.jpg

후학들의 교훈으로 보이는 구사(九思) 구용(九容), 오륜(五倫) 편액글은 1909년(己酉) 6월 초서한 것을 2004년(甲申) 7월 새로운 편액으로 교체하면서 재서하였다.

현재 관수재에 소장된 편액 7점(액호 2점, 시운 5점)은 2004년 종중에서 복원하였다. 이중 시운 편액글 5점을 후손 학운(鶴雲) 김주환(1931년생)이 새로 썼다.

 

금곡팔경(八景)은 동곡(東谷) 이복연(1768~1846)이 찬(撰)하다. 관수재 팔영(八詠)은 신헌(愼軒) 김옥섭(1878~1930)이 찬(撰)하다. 次관수재 팔영(八詠)은 잠계(潛溪) 백형기(1881~1948)가 찬(撰)하였다. 이 글들의 흔적은 각 유고문집에 남겨져 있다.  

 

용산면 금곡마을 영광김씨는 지난날 용산면 칠리안속 어산~청전마을 간 1,000두락을 소유한 부자 집안이었다. 이런 바탕에서 자손들의 교육을 위해 학문이 뛰어난 선비들을 훈장으로 모셔왔다. 이중에는 용산 묵촌 태생 남파(南坡) 이희석, 사복재(思復齋) 송진봉(1840~ 1898), 안양면 기산 태생 신헌(愼軒) 김옥섭 등 다수가 훈장을 맡아 주로 농한기인 겨울~봄철간에 강학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때 가진탄압에도 종중의 지도자 지헌(芝軒) 김한기(1863~ 1930)를 중심으로 단합하여 강학을 계속 이어가 서재를 발전시켰다. 신학문이 확산되면서 서재는 자연적으로 쇠퇴해가 마지막 훈장인 만곡(晩谷) 김창주 때 1980년 말경 폐하였다. 강학 대상은 주로 금곡, 인암 등 주변 마을 거주 학동이었다.

​금곡파종중에서는 영광김씨 시조 문안(文安) 김심언(?~1018) 이하의 선대 유고를 체계화 하여 정리한 "金谷遺文集"을 2010년 간행하였다.

​지난날 관수재에서 수학했던 현재의 대표적 인물로는 前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공사 감사 김채환(1937년생), 前 영광김씨 대종회장 김효전(1937년생), 前 서울시 중구 상공회의소장 김정전(1946년생), 前 EBS부사장 김명전(1955년생), 한학자 김규정(1959년생),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김득환(1961년생) 등 다수이다.

관수재는 ​영광김씨 금곡파종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오랜 흔적을 엿볼 수 있으나, 연혁 등 안내 시설물이 없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당국의 문화재 지정을 통한 관리 등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이는 요즘을 살아가는 금곡 출신 후손들의 관심과 선도적 추진이 중요한 과제라 사료된다.

​자문 : 김규정(한학자, 금곡마을 1959년생, 현 서울시 관악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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