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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존재집(存齋集)』
■대장부의 운명 값!
●여러 방술(方術)이나 잡기(雜伎)들 가운데 오직 의학(醫學) 이외의 것들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복서(卜筮)가 비록 성인이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오직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사람만이 점칠 수가 있고, 현인과 군자만이 쓸 수가 있으며, 보통 사람은 쓸 바가 없는 것이다. 소인은 소인의 일을 점치고, 흉인은 흉인의 일을 점치는 법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무익할 뿐만이 아니라, 도리어 백성들에게 해를 끼친다. 이 때문에 거북의 등껍질을 가지고 점을 치는 귀복(龜卜)이 먼저 없어진 것이다. 이것은 역시 천운(天運)의 자연스러운 형세이다.
오늘날의 점을 치는 여러 가지 술법들은 한갓 간사함만을 조장할 뿐이니, 금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관상술이나 사주팔자와 같은 것은 더욱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요행수를 바라고 이끗을 쫓아가는 습속만을 조장하고, 사람들이 올바름을 지키고 의리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을 꺾어버린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끊어버리는 것이 옳다.
풍수지리술에 이르러서는, 땅의 좋고 나쁨이 참으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신인(神人)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것이며, 복인(福人)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치가 아주 분명하고도 분명한바, 그 자손이 화를 받거나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럴 리가 전혀 없는 것이다. 참으로 그 까닭을 궁구해 보면, 그 의혹을 깨뜨리기가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사사로운 뜻에 가려져서 한없이 큰 세상의 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한없이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 참으로 애처로운 일이다.
비록 그렇지만, 식견이 뛰어난 사대부가 아니라면, ‘어찌하면 자신의 한 몸만을 이롭게 할까 하는 마음’을 줄이고, ‘요행수를 얻어서 속히 이루려는 생각’을 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잡스러운 방술이나 잡기의 폐단은 모두 없애치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諸方術雜伎。惟醫學之外。都無可用。卜筮雖聖人所作。維聖神可玩。賢人君子可用。凡民無所用。小人占小人之事。凶人占凶人之事。非惟無益於世。反有害於民。是以龜卜先亡。是亦天運自然之勢也。於今占筮諸法。徒長姦雄。禁之可也。况觀相談命之法。尤是無理。長人僥倖趨利之習。敗人守正盡義之心。苟有一分知識。絶之可也。至於地理葬術。地之美惡。誠曰有之。而非神人不可知。非福人不可得。其理甚明。其子孫禍福則萬萬無理。苟求其故。破惑不難。世人爲私意所蔽。爲無限世禍。爲無限不孝。可哀之甚也。雖然若非京士大夫。小何以利吾之心。而絶僥倖欲速之念。則諸伎術皆不待救弊而弊自止矣。

- 위백규(魏伯珪 1727∼1798), 「기술(伎術)」, 『존재집(存齋集)』

●해설
정조(正祖) 때 일생의 대부분을 전라도 장흥(長興)에 있는 장천재(長川齋)에서 보내면서 학문연구와 저술활동을 하여 많은 저술과 학문적 업적을 남겼던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라는 사람이 쓴 글이다. 위백규는 이 글에서 여러 가지 방술 가운데 의술을 제외한 점술, 관상술, 사주팔자, 풍수지리설 등은 모두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해독만 끼치는 것으로, 반드시 없애야 할 것들이라고 하였다. 위백규의 이 말은 점술이나 관상술 등 여러 가지 잡술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경계로 삼기에 충분한 말이다.

모 언론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 점을 쳐 보았다고 하는 사람의 비율이 38.2%이며, 그 가운데 화이트칼라층의 점치는 비율은 42.5%이고, 블루칼라층의 점치는 비율은 30.2%라고 한다.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발달된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열 사람 가운데 무려 네 사람이 점을 쳐 보았다고 한다. 또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고를 할 것으로 생각되는 화이트칼라층의 사람들이 블루칼라층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점을 많이 본다고 한다. 이 통계 수치만 놓고 보면, 참으로 놀라움을 넘어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옛날 글을 보면, 우리의 선현들도 종종 점을 치기는 하였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에 점을 치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쳤다. 우선 점을 치기 며칠 전부터 깨끗하게 목욕재계하여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하여 조금치의 사심도 가지지 않은 상태가 된 다음에야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점괘를 뽑았다. 점을 치는 대상도 개개인의 길흉화복에 관련된 것이기보다는, 주로 나라의 명운이나 중대한 일의 성패에 관한 것들이었다.

예전의 서책을 보면 점을 쳐서 묘하게 맞힌 기록이 종종 나온다. 사람들은 이것을 근거로 하여, 점이라는 것이 참으로 앞일을 신묘하게 맞추는 용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되레 점이라는 것이 정말 어쩌다가 맞는 것이라는 분명한 반증인 것이다. 점이 제대로 맞는 경우가 드물었으므로, 어쩌다가 맞춘 것을 뽑아서 특별히 기록해 놓은 것이다. 점이란 것은 그만큼 정확하게 맞추기가 힘든 것이다.

옛날에 공자(孔子)와 같은 성인도 『주역』을 가지고 점을 쳤다. 그런데 공자가 친 점은 오늘날의 점쟁이들이 치는 점과는 달랐다. 공자는 자신이 점을 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주역을 통해 덕(德)과 의(義)를 살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마음으로 점을 친 공자도 자신이 친 점이 100번을 치면 그 가운데 7, 80번 정도만 맞았다고 하였다.

공자와 같은 성인이 일체의 사심을 배제한 채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친 점도 겨우 이 정도만 맞았다. 그런데 더구나 공자의 발끝도 못 쫓아가는 요즈음의 점쟁이들이 사사로운 마음과 탐욕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친 점이 맞을 리가 있겠는가. 공자와 같은 덕과 학문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점을 치면서 다른 사람의 운명에 대해 자신 있게 맞출 수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100% 거짓이며 사기인 것이다.

옛날 선조 임금 때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란 분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오성과 한음’ 이야기에 나오는 오성 대감이 바로 이 분이다. 백사가 어느 해 정초에 집에 있는데, 맹인 점쟁이가 찾아와서는 “당신의 올해 운수를 점쳐 보니, 크게 횡액을 당할 운수입니다.”라고 하였다. 백사가 “사나운 운수를 무사히 넘길 방도가 있는가?”라고 묻자, 점쟁이가 방도가 있다고 하였다. 백사가 “그렇게 하자면 복채가 얼마면 되겠는가?”라고 하자, 점쟁이가 “좁쌀 한 말이나 삼베 두어 자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백사는 그 자리에서 시를 한 수 지어 읊고는 점쟁이를 내쫓았다.

門外新年賣卜人
(문외신년매복인)
대문 밖에 새해 들어 점쟁이가 찾아와서,

多言時或中如神
(다언시혹중여신)
남의 운명 귀신처럼 잘 맞힌다 떠드누나.

可憐男子堂堂命
(가련남자당당명)
가련토다 대장부의 당당한 이 운명 값이,

只直粗麻一布巾
(지직조마일포건)
거친 삼베 한조각의 값밖에 안된단 말가.

올해도 설날을 전후해서 용하다는 점집이나 관상쟁이들 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늘어섰을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다니.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이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하여 의지할 곳을 찾는 탓에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존엄하고 숭고한 운명을 겨우 복채 몇 푼 받고서 허언을 떠들어대는 점쟁이나 관상쟁이에게 내맡긴단 말인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새해 들어서 혹 점을 치거나 관상을 보고서 그것을 지나치게 신봉하면서, 그런 것들에 의지하여 자신의 운수를 바꿔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백사의 이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하여 점을 치고 관상을 본 것을 그저 한순간의 즐거움이나 위안을 얻기 위하여 한 것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영위하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운수를 틔워나가기 바란다.

글쓴이 : 정선용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우복집』, 『삼탄집』,『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
출처-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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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의 「점 보셔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국의 풍속화』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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