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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덕원부사공(21重俊, 1498~1549)

 字景凡이니 燕山 戊午 一四八九年 三月 十七一生이며 器宇魁衛하고 局量宏心하며 早名材略하여 登武科하고 至德源府使하다. 明宗 己酉 一五四九年 二月 三日 終하다.

(면주 기록)

儒士 良司憲府 監察 碩貞孫子生員 自恭五代孫이다. 器宇魁衛하고 局量雄深하며 材略奇遠하여 일찍 武科에 올라 德源府使가 되었는데 就任한지 몇 개월에 온갖 폐단을 모두 제거하니 한 고을이 모두가 즐거워하여 그늘진 비탈에 봄이 돌아온 듯 하였는데 결국 淸白으로 上司에게 信任을 얻지 못하고 바로 印綬를 풀고 돌아옴에 行裝에 한 가지라도 한바가 없었으니 자못 陸公 鬱林遺風이 있었다. 이로부터 仕進할 생각을 끊고 林泉에서 을 기르니 어떤 분들은 벼슬길에 나가라고 권하였으나 이 말하기를 淸白吏로서 子孫에게 남겨준 것도 또한 하지 아니한가 하였다. 아들 行誼로서 천거되어 禮賓寺 參奉에 임명되었다.(충의록 기록)    

 

 

                                 <교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확인 내용>

교지는 현존하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사월문중 덕원부사공파 파조(派祖)이며 후손들은 장흥군 용산면 계산리에서 거주한다. 덕원부(德源府)는 현재의 함경남도 원산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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