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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상주영장공 교지 1매

-원소장처 :

-현소장처 :

※ 상주영장공(諱 大經 21세, 1555~1623) : 법성만호공(諱 億章)과 숙인 창녕曺氏 사이에서 三子로 태어났다. 젊어서 종백형(從伯兄) 괴봉공(魁峰公)을 따라 무예를 배웠다. 선조(宣祖) 1575년(乙亥)에 무과에 급제, 원주판관(原州判官)을 지낸 후 귀향했다. 왜란(倭亂)이 일어나자 괴봉공의 격문에 응하여 재종 대기(大器), 대택(大澤), 從姪 순정(舜廷) 등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公은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의 군영(軍營)으로 들어가 적진(赤珍), 이현(梨峴) 전투에 나가 왜적을 베고, 병사 황진(黃進)과 상주(尙州) 전투에 나가 싸우다 어깨에 적의 화살을 맞은 부상을 입고 귀향하고 말았다. 이 사실이 행재소(行在所)에 알려지자 판서(判書) 박충간(朴忠侃)이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 조정은 1597년 公의 군공(軍功)을 감안, 상주영장(尙州營將)으로 임명했다. 묘소는 평화며, 配 숙인 완산崔氏는 순천시 해룡면 釰端峙 乾坐였으나, 2015년 봉두로 이장(移葬)하였다. 그 후 1758년 통훈대부(通訓大夫)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追贈)했다. 1865(乙丑)년 석천사(石川祠)에 배향(配享)됐다.

 

                  ■상주영장공 교지(敎旨)■

상주영장공 증통훈대부군자감정.jpg

  <1758 영조 35년, 증통훈대부군자감정자 정3품 下>

敎旨

權知訓練院奉事

魏大經贈通訓大

夫軍資監正者

乾隆二十三年十月十六日[印]

●내용 및 특징

1758년(영조 35) 10월 16일 영조(英祖)가 무과(武科)에 급제한 訓練院奉事 故 魏大經에게 通訓大夫軍資監正으로 추증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는 정3품 東班 문관에게 주던 下階 품계이고, 군자감정(軍資監正)은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맡은 군자감에 소속된 정3품 관원이다.

☞ 권지(權知) : 조선 시대에 과거 합격자로서 성균관, 승문원, 교서관, 훈련원, 별시위 등에 나누어 배치되어 임용 대기 중인 견습 관원으로, 문과(文科) 출신의 경우 삼관(三館)인 성균관, 승문원, 교서관에 나누어 배치되고 무과(武科) 출신의 경우 훈련원과 별시위에 나누어 배치되었다.

☞ 봉사(奉事) : 조선시대 돈녕부(敦寧府)와 각 시(寺)·사(司)·서(署)·원(院)·감(監)·창(倉)·고(庫)·궁(宮)에 설치된 종8품의 관직이다.

☞ 본 교지는 1999년 사진 촬영시 제대로 위치 선정이 되지 않았고, 떨림이 있어 연호 옆 추증과 관련된 부기(附記)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움이 있다. 여수시 봉두리에 거주하고 있는 五林 상복(85세, 상주영장공 14대 종손, 여수향교 전교 역임) 종손에 의하면 사진 속 교지는 행원 괴봉공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복사본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현재 원본 교지를 누가, 어디서 소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면서 후손들 중, 교지 소장인의 공개 등 관심과 협조를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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