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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위씨의 당면 현안 중 도문중의 개혁만큼 시급한 과제는 없다. 우리 위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해 도문중의 할 일은 그만큼 막중하다. 물론 1991년에 대종회가 조직되면서 문중의 크고 작은 현안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도문중의 몫이 줄어들었거나 없어진 것도 아니다.

위씨의 도문중 개념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도문중(都門中) 비숫한 일은 멀리 18세기부터 시작된다. 영이재공 등 당시의 문중 어른들은 사자산과 제암산 어디엔가 고려 때 시중(侍中)을 역임한 충렬공의 묘소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여러 번 시도 끝에 1740년(庚申) 어느 날 발견하기에 이른다.

묘소를 찾은 문중은 이듬해인 1741년부터 산소에서 시제를 지내기 시작한다. 그 때는 도문중의 개념으로 시제를 모신 것은 아니다. 문중에서 여유가 있는 집에서 제물을 장만해서 제사를 지냈다. 이런 사실은 현존하는 당시의 문서에서 어느 해는 유사, 어느 해는 또는 집사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확인되고 있다.

도문중이라는 개념은 1975년에 도입된다. 평화 백산재 경내에 하산사를 짓고, 시조공 충렬공 판사공 등 3현조의 위패를 모시면서부터다. 이 때 전문 13조의 모선계(慕先契) 계칙이 만들어졌다. 계칙은 전문(前文), 총칙, 임원, 운영 등 3장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임원 중 도유사 부유사만 있지 도문중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문중이라는 개념은 이 때부터 자리 잡게 된다. 각 종중은 시조공이 모셔진 하산사를 문중의 최고기관으로 여겼고, 문계장을 최고의 어른으로 받들어 왔다. 이는 뚜렸한 규약이 있어서라기보다 타문중 등 관행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도문중 운영형태도 대제(大祭)와 현안을 그때 그때 처리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도문중은 언제나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다. 시대가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화사회로 넘어 간지 오래지만 농경사회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창립당시도 미흡했던 모선계칙은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를 따르지 못했다. 이러자 대종회 일각에서는 도문중을 대종회 산하로 흡수하려는 언행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우선 도문중의 헌법이라 할 모선계칙부터 문제다. 그 계칙에는 가령 1999년에 발행된 기묘대동보의 잉여금 등 문중의 재산을 처리하는 내용도 없다. 쉽게 말하면 어누 누가 가로채도 할 말이 없다. 1년에 한번 치르는 대제는 우리로는 최대의 행사이나 고작 2명 또는 3명의  임원이 전담하고 있다.

더구나 문중 최고기관의 임원들이 문중의 재정에 기여를 않고 있다. 지금 전국 각 지역 종친회 임원은 크던 작던 일정한 회비를 내고 있다. 대종회장은 연간 120만원, 평대의원은 10만원, 지역종친회 임원도 모임마다 회비를 내고, 발전기금을 내고 있다. 그런데 도문중의 임원들은 한푼의 출연도 하지 않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

물론 도문중 임원은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를테면 대제 하나의 행사를 위해서도 몇날 며칠간 품을 내야 한다. 오고가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일이 끝나면 잘했네 못했네 뒷소리를 들은다. 문중을 위한 희생정신이 아니면 누구나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임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일단 공인이 됐으면 누구나 공감하고 수긍할 수 있는 부담과 희생을 해야 한다. 그게 일반 종원과 다른 위치인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도문중 개념부터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즉 지금까지의 도문중 개념은 과도기로 보고 새로운 도문중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헌법인 규칙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규칙을 개정할 때 념두에 둘 사항은 대충 다음과 같다. 우선 체제를 획기적으로 바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전문, 총칙, 회원, 임원, 회의, 사업, 재산관리, 포상 및 징계, 부칙 정도의 골격을 갖춰야 한다. 도문중의 명칭은 그대로 살리되 임원의 명칭은 회장, 부회장, 총무, 재무, 홍보, 전례, 감사 등으로 바꿔야 한다.

특히 대종회와의 관계를 슬기롭게 정리해야 한다. 앞서 밝힌대로 대종회 일각에서 도문중을 대종회 산하에 두려 했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역사가 그렇고, 관행이 그렇고, 위씨 종원들의 일반적인 정서가 그렇다. 또한 그런 발상이 나오기까지는 지금까지 도문중이 그만큼 무기력했다는 귀책사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단 도문중은 누가 뭐라해도 장흥 위씨의 최고기관이다. 이를 부정할 종원은 극히 일부를 빼고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종회도 당연히 도문중 산하의 기구여야 한다. 다만 도문중과 대종회가 종친업무를 추진하면서 겹치고 부딪칠 수 있으니 이를 미연에 방지할 장치를 둬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큰 잡음이 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문중과 대종회는 사업의 영역을 명료하게 구분해 놓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산하촌 도문중이 해왔던 대동보와 관련된 사업, 선조들의 사우와 재각의 신축, 개축사업, 비를 세우는 등의 사업을 도문중 영역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종회는 종보발간, 장학사업, 청소년수련회, 대제 참여독려 등을 들 수 있다.

모든 종친회 기구는 장흥 위씨의 발전을 위해 있는 것이다. 위씨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있는 도문중과 대종회가 영역다툼을 하다 발전은 커녕 퇴행으로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열악한 씨족이다. 그런 씨족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에도 화합, 둘에도 화합 뿐이다. 자중자애가 최선의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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