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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호조판서공 신도비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관직에 올랐던 사람에게만 세운 비다. 판서공(휘 덕화, 1551~1598)께서는 1585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과 참전한 공신이다. 公께서는 언양현감으로 부임, 왜적을 섬멸한 공으로 호성·선무공신으로 록되어 군자감정의 벼슬까지 올랐다. 그 뒤 아들 전공까지 인정, 호조판서(정2품)에 추징됐다. 후손들은 1938년 방촌마을 입구에 이 신도비를 세워 공의 功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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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조판서공(諱 德和) : 1551∼1598, 진사공(휘 곤, 1515~1582)과 광주李氏 사이에서 사자(四子)로 태어났다. 1585(乙酉)년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선조(宣祖)를 의주(義州)까지 호종(扈從)하였으며, 언양현감(彦陽縣監)에 제수(除授)되어 부임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웠다. 1596년 군자훈련원도정(軍資訓練院都正)으로 있을 때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체포 소식을 듣고 비분(悲憤)하여 병을 얻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그 후 1598(戊戌)년 公께서 타계하자 조정(朝廷)에서는 선조호종원종훈(宣祖扈從原從勳)과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으로 1616(丙辰)년 형조참판(刑曹參判)을 추증(追贈)하였다. 공(公)의 아들 병조참판공(兵曹參判公, 휘 정철)의 정사진무훈(靖社振武勳)과 청나라와의 회답별사(回答別使) 사행(使行) 등으로 1631(辛未)년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追贈)했다. 묘소(墓所)는 회진면 대리이다. 1806(丙寅)년 죽천사(竹川祠)에 배향(配享)과 2016(丙申)년 울산(蔚山) 충의사(忠義祠)에 배향(配享)되셨다.  (글·사진 :  栢江 위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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