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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淵齋) 송병선 선생 문충공이 천관산에 오셨을 때 많은 향사(鄕士)들이 그를 따랐다. 송포(松浦) 선생의 연령 겨우 20세의 영특한 재주를 이미 갖추고 연재선생께 모든 예를 갖추어 문인(門人)되기를 청(請)하니 연재선생께서는 말씀 몇 마디를 나누시고 可히 道에 적합하다시며 허락하시니 그 道같이 큼이 있으랴!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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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재질이 탁이하고 첨박학식(瞻博學識)하였다. 또한 일찍 연재(淵齋) 선생에게 나아가 이 구대(久大)한 德業을 이루었고 남들이 사모하여 잊지 못한다. 올 봄에 제자들이 유문(遺文)을 간행하고 유적비를 세우게 되니 가히 이런 사제자가 있겠는가. 돌(비석)은 이미 준비하여 놓고 제자들이 유집(遺集)을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비문(碑文)을 부탁하여 어찌 감히 감당 하리오 마는 고향 후배로써 사양치 못하고 근거장문(謹据狀文)하고 대략 이같이 서술하였으니 슬프도다. 이 고을 서생이시여! 비석은 높이 솟아올랐으니 많은 선비들이 오셔서 듣고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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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紀 四千三百五年 壬子 有火節 後生 遂寧 魏大煥 謹撰
光山 金 灝 書 講習契員 謹竪

정노수(丁魯壽) 선생은 1877년(丁丑 고종14) 11월 20일 장흥군 관산읍 죽교리 압해丁氏 집성촌인 내학마을에서 학우(鶴愚) 정병후(1858~1905)와 배(配) 담양田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경열(敬悅), 호(號)는 송포(松浦)이며, 일제강점기 때 유학자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타고난 자질이 남달랐다. 많은 서적을 탐독하고 문장을 두루 익혀 학식과 문필(文筆)이 탁월했다. 관직에 나아가기 위해 과거 공부에 마음을 두고 학문에 정진하였으나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관직에 나아갈 생각을 모두 접었다. 그 후 농번기가 되면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독서를 하면서 농한기에는 후생들을 상대로 강학하였다. 맨 처음 당동마을 옥림재(玉林齋)에서 시작한 후 시설이 협소하여 폐하였다. 이후에는 내학마을 학명재(鶴鳴齋)에서는 옥당, 죽교, 지정 출신 후생들을, 산서마을 관덕재(冠德齋)에서는 삼산 등 관산읍 남부권의 마을 후생들을, 용산면 어산리 영석재(永錫齋)에서는 어산, 접정, 인암마을 출신 후생들을 각각 강학하였다. 1905년(乙巳) 을사늑약을 당하자「전유금론(田有禽論)」을 지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강력히 배척하였다. 또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하는 일본인들을 향해서 강하게 저항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자 일본인들조차 선생의 지조에 놀랐다. 만년(晩年) 88세의 나이로 굶주린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줄 것을 희망하는 시(詩)를 짓기도 하는 등 평생을 청빈한 유학자로 살았다.

선생의 문하생(門下生) 20여명은 일관된 삶을 산 스승을 높이 평가하고 정신을 이어 받고자 "강습계(講習契)"를 조직하였다. 계원들은 벼 50섬(백미 25가마)을 단합으로 증식(增殖)시켰다. 선생이 1965년(乙巳) 타계하자 의재(毅齋) 위석한(1900~1982) 선생이 주간(主幹)하고 용산 접정 태생 성재(省齋) 이영훈(1930~ 2011), 춘사(春史) 이영숙(1932~ )이 참여, 유고(遺稿)를 정리하여 1972년(壬子) 3월 송포유고(松浦遺稿)를 간행하였다. 이후 1972년(壬子) 有火節(7월)에 선생의 학덕(學德)을 기리기 위해 유적비(遺蹟碑)를 세웠다.

자(子)는 동화(東華) 종배(1913~ 1942)와 종필(1933~?)이다. 이중 장자인 종배는 항일 독립운동을 한 유공자이다. 정부에서는 1990년 8월 15일 국민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손(孫)은 공태(1938~1989)와 계태(1958년생), 난태(1964년생 ) 용(1974년생)이다. 이중 공태는 종배 출(出)이며, 계태·난태·용은 종필의 출(出)이다. 이하의 손(孫)은 생략한다.

원래 유적비는 관산읍 옥당교(橋) 앞 학다리 마을로 내려가는 입구 선생의 자가 근처에 세웠다. 이후 1995년(乙亥) 천관산 도립공원 지정을 앞두고 관산읍 소재지 일원의 교통문제가 대두되었다. 현 외곽도로 건설을 추진하여 완공 후 2000년경 장흥군청에서는 선생의 유적비를 이설(移設)하기로 결정하였다. 방촌마을 방향에서 솔치재 방향으로 가는 국도(장흥대로) 천관산 입구 사거리 우측 산 밑 부지에 옮겨 세웠다.

비문(碑文)의 근찬(謹撰)은 안양면 월암마을 태생 백당(栢堂) 위대환(1907~1979)이 하였다. 또한 백당은 1966년(丙午) 용산면 계산리 사월재(沙月齋) 상량문, 사월재 팔경을 찬(撰)하였다. 1977년(丁巳) 장흥읍 평화리 하산사기(霞山祠記)를 찬(撰)하는 등 장흥위문 문사(門事)에 깊게 참여하였다.

근서(謹書)는 서예가 효당(曉堂) 김문옥의 아들 광산人 벽강(碧岡) 김호(金灝)가 썼다. 또한 벽강은 용산면 계산리 사월재(沙月齋)와 장흥읍 평화리 하산사(霞山祠)의 액호 편액을 썼다.

근수(謹竪)는 단합으로 강습계원들이 세웠으며, 松浦遺稿 간행으로 선생의 학덕을 기리는데 솔선수범 하여 지역사회의 귀감을 남겼다.

 

자문 : 압해정씨 학교문중,

춘사(春史) 이영숙(용산면 접정 새터 거주), 장암(長菴) 정길태(관산읍 내학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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