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원부사공(德源府使公)

공의 휘는 중준(重俊: 20世, 儒士 良의 子 司憲府 監察 碩貞의 孫子 생원 自恭의 五代孫 지장록p104)은 기우가 괴위(魁偉)하고 재략(材略)이 기원(奇遠)하여 일찍이 무과에 올라 덕원부사에 제수됐다. 공은 부사로 부임한 후 불과 몇 개월만에 온갖 폐단을 제거하니 그늘진 비탈에 봄이 돌아온 듯 부민들이 하나같이 즐거워하였다.

그러나 부패에 찌든 상사들은 공의 멸사봉공(滅私奉公)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불신(不信)함으로 얼마 되지 않아 부사에서 물러나 행장(行裝) 하나 취한 것 없이 맨손으로 귀향하고 말았다. 이 후에는 사진(仕進)할 생각을 포기하고 임천(林泉)에서 학문과 덕(德)을 기르며 여생을 보냈다.

공의 인품을 흠모한 주변인들이 다시 벼슬길에 나가라고 권유하자 자손에게 청백리(淸白吏)의 교훈을 남겨준 것도 후(厚)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였다. 아들 상(祥)이 행의(行誼)로서 예빈시(禮賓寺) 참봉(參奉)에 제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