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공(磻溪公)

공의 휘는 정명(廷鳴, 22世 1589 ~ 1640, 判官 德厚의 子 지장록 p127)이며, 호는 반계(磻溪)이다. 향시(鄕試)에 합격했으나 과거(科擧)에 관심이 없어 출사하지 않았다. 갑자(甲子)·정묘(丁卯) 두 난리에 형제들과 의병과 의곡을 모아 창의에 응했다. 1627年(丁卯)에는 의병을 이끌고 청주(淸州)까지 갔다가 난리의 평정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왕이 피난 갔다는 소식을 듣고 형제들과 함께 땅에 자리를 깔고 사죄하는 신민(臣民)의 도리를 다 하였다. 인조 18년에 졸한 후 1806년 죽천사(竹川祠) 배향하였으며, 유집(遺集)이 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