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현감공(熊川縣監公)

공의 휘는 정렬(廷烈, 22世 1580 ~ 1656, 判官 德厚의 子 지장록 p123)이다. 24세에 무과에 급제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627年 정묘란(丁卯亂) 때 백형 정훈(廷勳) 등 형제들과 의병과 군량을 모아 호소사(號召使) 오리(梧里) 이정승(李政丞)의 격문에 응해 체부군관(體府軍官)으로 일하다 난리 후 귀향했다.

조정은 호란(胡亂)으로 북변에 전념하고 있을 때 남해안이 근심스러워 특별히 수령을 고르던 중 공을 발탁, 웅천현감(熊川縣監)으로 임명했다. 얼마 후 호란이 일어나 왕이 피난길에 오르는데 쌍교(雙橋) 나루를 지키던 병사(兵使) 민영일(閔泳一)의 군(軍)이 군률(軍律)을 잃자 이에 격분, 혼자서 칠흑의 어둠을 뚫고 적진을 향해 돌진해서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왕의 항복으로 전투가 종식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