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령공(文化縣令公)

공의 휘는 산보(山寶, 23世 1593 ~ 1656, 軍資正 弘宙의 子 지장록 p128)이며, 호는 망미당(望美堂)이다. 공은 광해조 때 무과에 급제, 예빈시(禮賓寺) 주부(主簿)등을 역임하고, 호란(胡亂) 때 선전관(宣傳官)으로 왕을 호가(扈駕)하였다. 또한 동궁(東宮)이 심양에 불모로 갈 때도 호종하며 호위의 임무를 수행했다.

공은 난리 후 호성정사일등훈(扈聖靖社一等勳)에 록(錄)되고 이듬해인 1637년에 문화현령(文化縣令)에 임명됐으나 취임하지 않고 귀향해서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졸 후 석천사(石川祠)에 배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