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생원공(成均生員公)

성균생원공 휘 자공(自恭, 16世)은 판사공(判事公)의 셋째 손자로 일찍이 도학문장(道學文章)이 세상에 알려져 사림(士林)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공은 뜻한 바 있어 세종조(世宗朝) 때 둘째 손자인 건공장군공(建功將軍公) 휘(諱) 돈(頓)과 더불어 함경도 함흥(咸興)으로 이주하니 공이 곧 함종(咸宗)의 입향조(入鄕祖)가 된다. 순종(純宗) 말 월명사(月明祠) 창건과 함께 주벽(主壁)으로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