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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桃花梁(도화량) / 장천팔경

 

桃花梁(도화량)

 

◇장천팔경의 하나인 제2경 도화량에 대하여 읊은 시가 있습니다.
-장천재시에서 발췌-
 

-다암 위영복 작

雨後晴嵐翠滴濃
(우후청람취적농)
비 온 뒤 개이니 푸른빛의 산 안개 자욱하고

有何風棹泝流從
(유하풍도소류종)
어떤 돛단배 있어 물길을 거슬러 따라가니

此山亦是桃花界
(차산역시도화계)
이 산 또한 도화(무릉)의 세계이니

不願更看漁子容
(불원갱간어자용)
다시 어부의 얼굴 보기를 원하지 않을라네.

*도화원기에서 어부가 우연히 무릉도원을 찾음. 그 내용을 말함
*이곳이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무릉도원같이 아름다운 곳이니 나만 감상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 같습니다.

 

(글제공 : 野雲 위이환, 사진제공 : 栢江 위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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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泉 2016-03-10 17:35 *.39.136.28

◇도화원기(桃花源記)
-陶淵明(晉: 도연명) 作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為業。緣溪行, 忘路之遠近。忽逢桃花林, 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漁人甚異之。復前行, 欲窮其林。
동진(東晉) 태원(太元) 연간, 무릉(武陵)이란 곳에 고기잡이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작은 강물을 따라 배를 타고 상류로 올라 가는데 가다 보니까 자기가 얼마나 왔는지 잊어버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복숭아 나무숲(도화림, 桃花林)과 맞닥드리게 되었다.
그 숲은 물길 양안(兩岸)으로부터 안쪽으로 수백 걸음에 다다르도록 펼쳐져 있었는데, 중간에 복숭아 나무 외에 다른 나무는 없었다. 향기 나는 풀들은 선명하고 아름다웠고, 떨어지는 꽃들은 이리저리 나부꼈다. 어부는 무척 기이하게 느꼈다. 어부는 다시 앞으로 향했고 숲의 끝까지 가보고자 했다.

林盡水源, 便得一山。山有小口, 彷彿若有光, 便舍船, 從口入。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朗。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阡陌交通,
雞犬相聞。其中往來種作, 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髫, 並怡然自樂。
숲의 끝부분에 물길의 발원지가 있었고 어부의 눈앞에 산 하나가 나타났다. 산에는 작은 구멍(동굴)이 있었는데 어슴푸레한 것이 그 안에 꼭 무슨 빛이 있는 것만 같았다. 어부는 그래서 배에서 내려서 그 구멍을 통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이 처음에는 무척 좁아서 사람 하나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수십 걸음을 더 가니까 갑자기 눈 앞이 탁 트이면서 좁았던 공간이 확 넓어졌다. 그곳의 땅은 평탄하고 넓었으며 가옥들은 가지런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비옥한 밭과 아름다운 연못 및 뽕나무, 대나무 등도 있었다. 밭 위에 가로 세로로 난 작은 길들은 서로 교차하며 연결되어 있었고,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도 서로 들렸다. (이 말은 내가 옆 집 개 짖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옆 집 사람이 우리 집 닭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웃간 서로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즉 집들이 조밀조밀 붙어있다는 의미).
사람들이 그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농사짓고 밭일하는데, 남자 여자가 몸에 입은 옷이나 착용한 것들의 모양은 모두 외부 사람과 같았다. 노인과 어린아이가 서로 정답게 즐겁게 유유자적하며 지내고 있었다.

見漁人, 乃大驚。問所從來, 具答之。便要還家, 設酒殺雞作食。村中聞有此人, 咸來問訊。自云先世避秦時亂, 率妻子邑人來此絕境, 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問今是何世, 乃不知有漢, 無論魏晉。此人一一為具言所聞, 皆嘆惋。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停數日,辭去。此中人語雲:[不足為外人道也]
그곳 사람들은 어부를 보자 깜짝 놀랐다. 그들은 어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어부는 상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리하여 그곳 사람들은 어부를 그들의 집으로 초대했고, 술을 차리고 닭을 잡고 음식을 만들어 어부를 대접했다. 사람들은 마을에 이런 사람이 왔다는 얘길 듣자, 죄다 몰려와 그 어부에게 이것저것 소식을 물었다. 그들이 자신들에 대해 말하기를 조상이 진(秦)나라 때의 혼란을 피해 아내와 아이들 및 고을 사람들을 데리고 세상과 격리된 이 곳으로 왔는데, 다시는 밖으로 나가질 않아서 결국 외부 세계와 단절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금이 어느 시대냐고 묻는데, 보니까 위(魏), 진(晉)은 커녕 한(漢)나라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게 아닌가. 이 사람 즉, 어부는 자기가 들은 바 즉, 아는 바를 하나하나 자세하게 그들에게 말해주었고,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모두 감탄 및 탄식을 금치 못했다. 여타 마을 사람들도 각각 그 어부를 자기 집에 초대하였고, 모두 술과 음식을 내와 그 어부를 대접했다. 그 어부는 그곳에서 몇 일간 머물다가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떠나기 전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그 어부에게 말했다. "우리의 일을 외부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마시게"

既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誌之。及郡下, 詣太守, 說如此。太守即遣人隨其往, 尋向所誌, 遂迷, 不復得路。
이윽고 어부는 그곳에서 나와서 자기가 타고 왔던 배를 발견했다. 어부는 이전의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곳곳에 표시를 해 두었다. 어부는 군(郡, 즉 무릉군)에 도착해서 태수(즉, 무릉군 태수)를 찾아가 알현했고, 이와 같은 일(즉, 자기가 겪은 일)이 있었노라고 말했다. 태수는 곧장 사람을 파견하여 그 어부를 따라 가서 이전에 표시해 둔 곳을 찾게 했으나, 곧 길을 잃었고, 다시는 표시해 둔 그 길을 찾지 못했다.

南陽劉子驥, 高尚士也, 聞之, 欣然規往。未果, 尋病終。後遂無問津者。
남양(南陽)의 류자기(劉子驥)는 고상한 선비인데, 이 얘기(즉, 어부의 도화원 얘기)를 듣자, 기쁜 마음으로 가 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가보지 못했고(즉, 도화원을 찾지 못했고), 오래지 않아 병으로 죽었다. 그리하여 이후 아무도 이에 관해 묻는 이가 없었다.

도화원기 序

 

(글제공 : 野雲 위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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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泉 2016-03-10 17:36 *.39.136.28

■桃花源 詩(도화원 시)
도연명 작

瀛氏亂天紀(영씨란청기) 진시왕이 天道를 어지럽히자
賢者避其世(현자피기세) 현자들이 세상에서 몸을 숨겼네.
黃綺之商山(황기지상산)
네 사람의 은자가 상산으로 갔고,
伊人亦云逝(이인역운서) 이들은 이 곳으로 피해 왔네.
往迹浸復湮(왕적침복인) 은신해 갔던 발자국은 묻혀 지워 졌고,
來逕遂蕪廢(래경수무폐) 도화원으로 오는 좁은 길은 황폐해 졌다네.
相命肆農耕(상명사농경) 서로 도와 농사에 힘써고,
日入從所憩(일입종소게)
해 지면 편하게 쉰다네.
桑竹垂餘蔭(상죽수여음) 뽕과 대나무가 무성하여 그늘이 짙고,
菽稷隨時藝(숙직수시예) 콩과 기장을 때 맞추어 심는다네.
春蠶收長絲(춘잠수장사) 봄엔 누애쳐 실 뽑고,
秋熟麻王稅(추숙마왕세) 가을 되어 추수해도 세금 바칠 일 없네.
荒路曖交通(황로애교통) 황폐한 길이 희미하게 트이고,
鷄犬互嗚哭(계견호명곡) 닭과 개가 서로 울고 짖네.
俎豆有古法(조두유고법) 제사는 여전히 옛 법대로 치르며,
衣裳無新製(의상무신제)
옷 모양은 요즘 시대의 것이 아니네.
童孺縱行歌(동유종행가) 어린 아이들 길에서 노래하고,
斑白歡遊詣(반백환유예) 백발 노인들은 즐겁게 서로를 찾네.
草榮識節和(초영식절화)
풀 자라나면 봄인 줄 알고,
木衰知風勵(목쇠지풍려) 나무 시들면 바람 찬 겨울임을 안다.
雖無紀曆誌(수무기역지) 비록 월역은 없어도,
四時自成歲(사시자성세) 사시의 변화로 세월 감을 안다네.
怡然有餘樂(이연유여락) 기쁜 낯으로 언제나 즐겁게 살고,
於何勞知慧(어하노지혜) 애를 써 잔꽤 부릴 필요가 없다네.
奇踵隱五百(기종은오백) 도원으로 오는 길 가리워진 지 오백년 만에,
一朝敞神界(일조창신계) 홀연히 신비한 세계가 드러나게 되었네.
淳薄旣異原(순박기이원) 순박함과 조야함은 그 근원을 달리하니,
旋復還幽蔽(선복환유폐) 도원의 순박함 이네 그 모습을 감추었네.
借問游方土(차문유방토) 속세에서 노는 사람들에게 묻겠노라
焉測塵효外(언측진효외) 먼지와 소음 없는 세상을 사는가? 願言攝輕風(원언섭경풍) 바라건데, 사뿐히 바람을 타고,
高擧尋吾契(고거심오계) 높히 올라 나의 이상을 찾으리.

 

(글제공 : 野雲 위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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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泉 2016-03-10 17:41 *.39.136.28

도화교 밑에 도화량이 있군요.

우리 문중의 지성과 풍류의 표상입니다.

장천팔경을 잘 다듬어 후세에 전하도록 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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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2016-03-11 16:25 *.12.243.96

도화량의 위치는 현 도화교 밑에 없습니다..200여미터 위쪽에 있습니다..

장천문중에서는 장천재가 1978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후 편리성과 조경을

고려하여 현 도화교를 놓았습니다..도화량과 도화교 위치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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