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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화목(宗親和睦)의 방촌마을 무기계(無忮契)
 

1.무기계의 유래(無忮契由來)
 방촌마을에는 無忮契라는 契 組織227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傍村 마을은 先史時代부터 마을이 形成된 곳으로 百濟 時代에는 烏次縣, 統一新羅 時代에는 烏兒縣, 高麗 時代에는 定安縣, 長興知事府, 懷州牧治所가 있었던 곳이다. 高麗末 1379倭寇의 잦은 침략으로 나주 철야현으로 치소를 옮기면서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朝鮮建國과 함께 장흥부가 중령산에 설치되었다가, 1414년에 長興都護府가 수령현에 설치되면서 그 곳에 살던 장흥위씨들은 平和로 터를 옮겨 살게 되었다.
평화에서 살던 장흥위씨가 능주로, 冠山으로, 關北으로 分派되면서 위씨들은 지역을 넓혀가게 되었다. 蓉山을 거쳐 冠山에 이주해 온 위씨는 이웃 堂洞 마을에 거주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顔巷公 諱 德厚1578년경에 방촌에 이주하면서 처음으로 방촌에 入鄕하여, 이미 살고 있던 任氏, 朴氏, 白氏 등과 어울려 살다가 위씨의 勢力이 넓혀지면서 위씨 집성촌을 이루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무기계는 1791(정조 15) 傍村의 위씨 친족 30여 명이 道純을 중심으로 宗親間의 화목을 목적으로 契를 결성하자 存齋 魏伯珪 선생은 猜忮하지 말고, 서로 화목하라는 뜻으로 無忮契라 명명하고 意味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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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공은 무기계 서문에서 猜忮字學적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는 변에 자를 붙였으니 개의 마음이고, 자는 변에 자를 붙였으니 남과 함께 하지 않는 갈라진 마음이라는 것이다. 정리해 보면 猜忮는 온갖 의 근원이고 온갖 의 원수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존재공이 우려하는 점은 財産이 있는데 財産이란 다툼의 창고라고 여겼다. 즉 재산으로 인해 알력이 생겨 兄弟間에 원수가 되고, 父子間에도 용서하지 않은데 촌수가 먼 일가 親族의 경우는 말할 나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자 즉 남을 해치는 마음은 싸움을 일으키는 곳이다. 잘못되면 도리어 위씨 門中의 쇠망을 재촉한다고 걱정하면서 無忮契라 칭하였다.
당시 조직원은 道純,  道立,  道及,  守粱,  道運,  道佺,  道洽,  道峻,  道澗,  道玉,  道任,  道億,  道英,  道集,  道昕,  道約,  榮一,  道經,  道晃,  榮國,  榮夏,  道根,  道璘,  道晟,  道輯,  道珏,  道秀,  道植,  道勳, 廉宗揵으로 그 長孫이 承繼 하여 왔는데, 현재는 추입한 계원들이 있어 4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무기계는 옛 어른들이 활동했던 것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여름에는 中伏 날 煮伏을 통해 계원들의 화목을 도모하고, 陰曆 2월에는 좋은 날을 택해 天冠山下 계양산에 설치된 祭壇에서 새벽 한 시에 有司 집에서 준비한 祭物을 設饌하고 祭冠들과 契員들이 참석하여 山神祭를 모시며, 다음날 계원들이 모여 계 자금 運用에 대한 결산을 하고, 마을의 발전과 계원간의 화목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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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존재공의 무기계 서 번역문(存齋公無忮契 序 飜譯文)
(飜譯文存齋公께서 無忮契情神後孫들에게 종친간의 和合을 부탁하는 글로, 序文을 전주대학교 한국고전연구소에서 번역한 글을 그대로 옮겼음을 밝혀 둔다)
  사람이 萬物 가운데 가장 귀하고 영명한 存在인 것은 천지의 맑고 순수한 기를 부여 받고 인의와 중정의 본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禽獸는 탁하고 잡된 기를 타고 남으로써 그 본성은 사납고 탐욕스러우며 비꼬이고 사악하다. 이 때문에 서로 猜忌하여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다투어 싸워 서로 용납하지 않으며, 완고하여 서로 배울 줄 모르고 나쁜 짓을 하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심한 경우에는 부자와 형제가 서로 잡아먹어 마침내 어리석고 완악하며 지극히 천한 물건이 된다.
  사람도 타고난 기가 맑고 순수하지 않은 경우에는 모습은 사람이지만 본성은 금수이다. 금수의 본성은 통괄하여 말하면 오로지 시기하여 해치기만 한다. 이 때문에 성인이 ()자를 만들면서 ()변에 ‘청(靑)자를 붙였으니 대개 개의 마음이고, ()자를 만들면서 ()‘지(支)자를 붙였으니 대개 함께 하지 않는 갈라진 마음이다.
  이 때문에 시기하여 해치는 사람은 매번 질투심을 품어 별도로 옆으로 달려가는 마음이 생기니 이는 온갖 악의 근원이고 온갖 선의 원수이다. 어린아이가 뱃속 태아로 있을 때 그 큰 아이를 질투하여 병들어 파리해지게 하니 성인이 이를 기병(鬾病 : 아이귀신병)이라고 했다. 그 글자는 ()변에 ()자를 붙인 모양이니 남을 해치는 귀신이 그 태반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이는 뱃속 태아로 있을 때에도 오히려 그 을 해친다는 것이다. 하물며 태어나고 자라면서 세상일과 물욕(物慾)이 더해진 경우이겠는가. 그러니 영명하지 못하여 금수가 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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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古에 흉악한 소인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근본은 모두 남을 헤치는 마음이 빌미가 되었다. 고수(瞽瞍)聖人인 아들 을 죽이려고 한 일, 이 성인인 형 순을 죽이려고 한 일(1), 管叔蔡叔이 각각 형이고 동생이었던 周公을 죽이려고 한 일(2), 공공(共工) 환두(驩兜)가 고도(皐陶), ()와 화합하지 못한 일(3), 少正卯가 공자의 정사에 대해 반대한 일(4), 환퇴(桓魋)가 공자를 죽이려고 한 일(5), 曺節.王甫.章惇.蔡京이 많은 현인을 무함하여 죽인 일(6), 柳子光.鄭順朋.南袞.沈貞이 여러 현인을 무함하여 죽인 일(7)은 모두 남을 헤치는 마음이 빌미가 되었다.
저 흉악한 사람들은 재능.지식.지망(地望:지위와 명망).언어.풍채가 모두 월등하게 뛰어난 자들이었다. 만약 남들과 일을 같이한다면 위로는 고도.().().대순(大舜).주공.공자 같은 사람이 충분히 되고도 남을 수 있었고 아래로는 이응(李膺).사마광(司馬光).김한훤(金寒暄).김굉필(金宏弼).조정암(靜菴 趙光祖) 같은 사람이 충분히 되고도 남을 수 있었지만 단지 남을 헤치는 마음이 안에서 근질근질하게 하여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어찌 기꺼이 만고의 소인이 되어 저 사람들이 죽음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통쾌하게 여기기를 마치 달기(妲己)가 포락(炮烙)의 형벌을 보고서 즐겁게 여겼던 것(8)과 같이 한단 말인가. 이는 참으로 속담에 쥐가 마음의 경락을 간지럽혀 헤치는 일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성을 지닌 자는 선한 사람 보기를 원수처럼 하고, 소인 만나기를 엿과 꿀처럼 한다. 차라리 수원(疏遠)한 사람과 친할지언정 근밀(近密)한 사람을 견디지 못하며, 차라리 다른 사람을 좋아할지언정 집안사람을 몹시 기피하고, 차라리 수준이 낮은 사람을 벗할지언정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따르기를 부끄러워한다.
  크게는 세상과 나라를 패망시키고, 작게는 친족과 자신을 죽음에 빠지게 하면서 죽을 때까지 뉘우칠 줄 모른다. 타인의 입장에서 말하면 소인에게 밀고 당김을 당하니 통탄스러움이 더할 나위 없이 심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논하면 사람이지만 금수와 같으니 슬픔이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심하다. 이 때문에 요순이 선을 남과 함께 했고(9) 공자와 맹자는 충서(忠恕)를 주로 했으니(10) 이것이 그들이 성인이 된 이유이다.
  우리 위씨가 성()을 얻은 뒤부터 4천년 동안 중국의 큰 성씨가 되었건만 어찌하여 우리나라에 온 뒤 천 년 동안 외로운 겨레가 되었는가. 다행히 우리 당곡(唐谷) 선조께서 덕을 닦아 후손들을 넉넉하게 해 주었으며, 우리 5대조의 형제와 자손이 조금 번성했지만 지금 현재도 그 수가 역시 많지 않다. 내 자식과 조카 항렬에 이르러서는 이미 7, 8대 전에 갈라진 일가이기에 기쁨과 근심이 서로 상관이 없어 거의 길에 오가는 사람과 같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다행히 한 동네에 수십 집이 같이 살면서 농사짓거나 땔나무할 때 서로 부르고, 죽거나 태어날 때 같이 방문하니 화목한 정이 백대(百代)나 유지되고 정분이 한 집에 사는 것처럼 깊다. 그러나 빈부가 고르지 않고 습성이 가지런하지 않아 그 가운데에서 만일 남을 헤치는 마음으로 서로 겨루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패망할 것이고 선한 자는 배척당할 것이다. 살아서는 못물이 혼탁해져 고을 이웃들이 비루하다고 침을 뱉고, 의리가 한 근원에 어긋나서 신명과 하늘이 보우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상하 질서가 무너지고 쇠잔해질 것이다. 비록 상한(常漢)의 융성한 집안과도 나란히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이니 생각하면 오들오들 떨리고 말하자는 마음이 아플 것이다.
  다행히 너희 30명이 마음이 같고 의논이 합치되어 이 계(契)를 결성했다. 다른 사람 없이 형제들만 하나의 계를 구성했으니 삼행(11)의 모임이다. 그러나 계에 이미 재산이 있으니 재산은 다툼의 창고가 된다. 재산으로 인해 알력이 생겨 형제간에 원수가 되고 부자간에도 용서하지 않는다. 하물며 촌수가 먼 일가의 경우이겠는가.
  더욱이 남을 해치는 마음을 일으키는 곳이다. 이 때문에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같은 마을에서 갑자기 사이가 나빠지고 한 자리에서 칼과 창을 서로 휘두른다. 남을 해치는 짓을 하는 자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남의 해침을 당한 자는 죽음에 빠져 옥과 돌이 모두 불타고(12) 서로 침몰하여 패망한다. 도리어 위씨의 쇠망을 재촉하여 결국 계를 맺지 않느니만 못하니, 어찌 두렵고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마침내 논어남을 해치지 않으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면, 어찌 착하지 않겠는가.【不忮不求 何用不臧】(13)의 뜻을 취하여 『無忮契』라고 이름 지었다. 나는 너희들이 대순주공공자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혹 스스로 기꺼이 공공환두남곤심정 같은 사람이 되더라도 또한 천명이니 사람이 그것을 어찌하겠는가. 공공환두남곤심정을 부끄러워하여 대순주공공자를 배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다행이 있겠는가. 피를 뿌려 먹을 갈고 뼈를 깎는 마음으로 종이에 써서 계의 序文으로 삼는다.
(1) 고수가 순에게 창고에 올라가서 수리하게 하고서 사다리를 치운 다음 창고에 불을 질러 순을 불태워 죽이려 한 일과, 순에게 우물을 파게하고서 고수와 상이 우물을 매워 순을 생매장시키려 한 일을 말한다.
(2) 주나라 성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주공이 조카인 성왕을 보호하기 위하여 섭정했는데 주공의 형인 관숙이 동생인 채숙 등과 함께 주공이 장차 성왕에게 이롭지 못하다.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무경과 반란을 일으켜 주나라를 배반한 일을 말한다.
(3) 순 임금이 섭위하여 공공을 유주(幽洲)에 유배하고 환두를 숭산에 유치하는 대신에 고요를 사()로 삼고기를 전악으로 삼은 일을 말한다.
(4) 소정묘는 춘추시대 노나라 대부로써 정사를 어지럽힌 자인데, 공자가 대사구(大司寇)로써 재상의 일을 맡았을 때 그를 주살했다
(5) 공자가 송나라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큰 나무 아래에서 예를 익히고 있는데 석곽을 만드는 일로 공자의 책망을 받은 적이 있던 송나라 사마(司馬) 환퇴가 공자를 죽이고자 한 일을 말한다.
(6) 조절과 왕보는 모두 후한 영제 때 환관인데 영제를 책립한 공으로 권력을 잡은 다음 함께 손발을 맞춰 태부(太傅) 진번(陳蕃)과 대장군 두무(竇武)를 모함하여 죽이고, 발해왕(渤海王) 모반 사건을 꾸며 관련자들을 복주(伏誅)시켰다. 정돈과 채경은 모두 송대(宋代) 간신으로 왕안 석의 신법당이었는데 차례로 재상이 되어 많은 구법당의 인물을 무함하여 죽이거나 정계에서 축출했다.
(7) 유자광은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일으켜 김종직 등 사림파를 죽인 장본인이고, 정순봉은 명종 때 유원형 등과 을사사화를 일으켜 대윤(大尹) 일파를 죽인 핵심적인 사람이며, 남곤과 심정은 중종 때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등 사림파를 죽인 장본인이다.
(8) 은나라 주왕이 달기(妲己)를 총애하여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걸어서 숲을 만들어 놓고 밤새도록 잔치를 벌이면서 즐겼으며 이를 비방하는 자에 대하여는 구리 기둥에다 기름을 바르고 이를 숯불로 달군 다음 기둥을 기어 올라가게 하여 미끄러져 불에 떨어져 죽는 것을 달기와 함께 보면서 즐겼다고 한다.
(9) ≪맹자공손축 상(公孫丑 上)대순(大舜)은 이보다 더 위대함이 있었으니 선을 남과 함께 하시어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르시며 남에게서 취하여 선을 함을 좋아하셨다. 〔大舜有大焉 善與人同 舍己從人〕라고 했다.
(10) ≪논어〈里仁〉에 공자가 이르기를 삼아, 우리의 도는 하나로써 관통했느니라.〔參乎 吾道一以貫之〕라고 하니, 曾子ㅈ께서 라고 대답했는데 공자가 밖으로 나간뒤 다른 문인이 증자에게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증자가 이르기를 부자의 도는 충서일뿐이다. 〔夫子之道 忠恕而 己矣〕라고 했다.
(11) ≪존재집〈生日會序〉에서는 한 번 세상에 태어난 것과 사람으로 태어 난 것 두 가지를 다행으로 언급했다. 이 두 가지에다 한 성씨의 형제인 것을 합쳐 세 가지 다행(三幸)이라고 한 듯하다.  
(12) 서경》〈夏書 胤征〉불이 崑岡을 태우면 옥과 돌이 모두 불탄다〔火炎崑岡 玉石俱焚〕라고 한데서 온 말로 착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다 같이 재앙을 당한다는 뜻이다.
(13) 논어》〈子罕〉에 나오는 말로시경》〈衛風〉〈雄雉〉의 구절을 공자가 인용한 것이다.

3.산신제 축문(山神祭 祝文)
天冠山之神 嵩高維嶽 鎭此海陬 中州淑氣 于焉蓄止 嗙礴扶輿 發爲靈奇 巖峰崷崒 泉脉淨活 郊原溢澤 豊稔稼穡 崖谷氣厚 草樹茂茁 元元民生  依仰生息 英乂駿發 文武並顯 惟我有臨 靈異昭闡 白氣敲景 仙樂殷響  衆譽所萃 造化攸佑 凡丘剩陵 順迪惟命 風雨霜露 莫之興孽 肆惟一坊 各自精白 不戒胥孚 共迓靈休 掃玆壇墠 伏惟明神 降鑒微誠 俾我生靈  克生克養 奠我牲幣 恭脩蠲潔 敢陣心膂 胚息三元 上鳴民國 下敦民風 氓謳于農 士慶尙賓 截此名區 反朴還淳 菀惟靈譽 實歸于神 神人胥依  於千萬年 薦此吉蠲 歲以爲常 于是于止 我歆我聽 謹以 明水淸酌   恭伸奠獻   

산신제 축문 번역문
天冠山은 높고 높이 솟은 큰 뫼로 남해 바다의 섬들을 鎭壓하고, 중주의 맑은 기운 듬뿍 담아 모아 이 땅에 가득하니 신령스럽고 기이한 것이 피어나도다. 巖峰이 뾰족뾰족 높이 솟음에 샘물은 맑고 활기차며 들판엔 물이 넘치고 심어 거둔 곡식은 넉넉하다. 계곡 기운 두터우니 草木이 무성하고 밑바탕 백성들은 우러러 낳고 자람에 의지하고, 영웅과 재주꾼 자주 일고 文武官이 함께 나타나게 하소서. 한갖 우리는 지켜보겠사오니 神靈스럽고 기이함이 밝게 들춰나고 좋은 기운 빛나게 두들기니 신선 음악 은은히 퍼지고, 뭇 칭찬 모여 조화롭게 도우며 크고 작은 펑퍼짐한 언덕에 시키신 대로 에 따르겠나이다. 風雨霜露 흥얼거림을 막고 오직 한결같은 이 땅에 각자 스스로 정백하게 하며 경계치 말고 서로 믿고  다함께 신령님 쉴 곳 맞아 이에 단선을 청소하고, 과 폐를 올려 조심스레 닦고 깨끗하게 하여 감히 온갖 정성 바치오니, 엎드려 바라오건데 명신께서는 降臨하시어 작은 정성 살피시고 우리들을 도와 靈驗을 일으키시면 생을 다하여 힘껏 받들겠나이다. 낳고 자란 삼원에 위로는 백성의 나라를 울리고, 아래로는 民風敦篤히 해서 백성들은 農歌를 부르고, 선비들은 손님 받드는데 정성을 다 한다면 분명히 이름난 마을에 질박하고 순박함이 반복 순환해서 좋은 칭찬 완유하여 진실로 모든 공이 신께로 돌아 갈 겁니다. 신과 사람이 서로 의지해서 천년만년토록 이 같이 길하고 깨끗함을 올려 해마다 계속하겠사오니, 신께서는 우리와 같이 좋은 음식 먹고 우리와 같이 좋은 음악 들읍시다. 삼가 맑은 물과 깨끗한 잔 조심스럽게 올리오니 歆饗하시옵소서.

4.무기계의 과제(無忮契課題)
  우리 마을 傍村先史時代부터 마을이 形成된 곳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우리 씨는 顔巷公 魏德厚1578년경에 堂洞에서 방촌에 入鄕하여 現在까지 위씨 集成村을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고 본다. 무기계는 집성촌을 이루면서 1791년에 道純을 중심으로 30여명의 契이 뜻을 같이하여 조직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離農으로 인하여 우리 위씨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무기계 계원으로서 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22 명이다. 80대가 10, 70대가 6, 60대가 6명으로 앞으로 存續이 어려운 실정에 당면하고 있다. 이 계가 계속 존속이 되려면 마을 분들이 많이 추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촌에는 정월대보름 날 별신제를 모시기 때문에 무기계에서 모시는 山神祭現實 상황에서 다시 한 번 考慮해 볼 문제이다. 끝으로 무기계의 정신인 시기하지 않고 和合하는 마음은 우리가 길이 보전해야 할 課題이다--

글 : 錦峯(위인환)

 

 ※ 윗글 하단부 당시 조직원 인명에서 특별하게 마지막 인명에 "염종건(廉宗健)"이 확인된다. 이분은 방촌마을에 파주염씨 입향조가 된다. 입향 연유는 당대 보성군 문덕에서 거주 했던 입향조의 고모할머님이 방촌마을 위백원(1709~ 1779, 안항공 5대종손)에게 시집와 고모할머님을 뒤따라 방촌마을로 입촌하게 되었다고 傳한다.

 

 

염ㅇㅇ(1880~ ?)는 현손이고, 방촌 다산재를 중수한 대목수 염병일(廉昞日1905~ ?)은 5대손 입니다. 염재환(1931~ ? 작고), 염두환(1940~ ? 작고), 재력가 염문환 (1943년, 서울 장위동 거주)이 6대손이고, 염규철(1954년), 염규태(1957년)등이 7대손 입니다. 200년이상 방촌에서 파주염씨가 거주하였으며, 현재는 거주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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