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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조상이야기

원감국사와 장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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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봉(壯元峰)은 장흥 위씨의 전설적 고향이다.
산의 소재지는 전남 장흥군 장흥읍 남동리 88번지 장흥법원 뒷산이다. 그 산에 별로 높지 않는 봉우리 2개가 있는 데 장원봉과 거말봉이라 일컫는다.

 

언제인지는 모르나 선조들은 산아래 남동리에서 살았다. 시조공께서 신라조정에서 물러나 어디서 사셨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예종 때 수태보문하시중인 5세 계정할아버지도 이곳 출신이라고 봐야한다.

 

6세 소도 호부원외랑의 벼슬을 했다. 그는 원방대부인 송씨와 혼인했다. 혼인한지 얼마 후 원개(1226년), 문개(1228년) , 신개(1230년) 등 세 아들을 낳았다. 3형제는 벼슬길에 나아가기 위해 학업에 정진했다.

 

결과는 얼마 후에 나타났다. 장자인 원개는 1242년(壬寅) 약관17세로 사원시(司院試)에 합격하고, 2년 뒤19세 때인 1244년(甲辰) 춘위예부시(春?禮部試)에 장원급제하여 영가서기(永嘉書記)로 조정에 첫 발을 내딛었다.

 

둘째인 문개도 과거에 응시했다. 형이 장원급제한 바로 이듬해인 1245년(乙巳) 약관 18세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막내인 신개 또한 과거에 응시해 애석하게 장원은 못했지만 급제하니 수령(遂寧)고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장원봉과 거말봉은 이들 원개·문개·신개 형제들의 장원급제로 비롯된다. 사실 장원급제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그런데 세 명의 형제들이 연이어 합격했으니 마을의 경사요 고을의 자랑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뒷산 두 봉우리의 이름을 바꿨다. 이전에는 단순히 큰 봉, 작은 봉으로 불렀다. 그러나 위씨 삼형제들이 장원에 급제하면서 큰 봉을 ‘장원봉’작은 봉을 ‘거말봉’이라 부른 것이다.

 

급제 이후에도 형제들은 나라와 사회에 이바지한다. 원개는 영가서기로 출발해서 사절(使節)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 가기도 했다. 사절의 임무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아마 원(元)나라의 동정(東征)을 미리 알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몽고의 침략으로 나라의 어지러움을 한탄하다 마침내 불가에 귀의한다. 장원에 급제해서 관직생활을 한지 꼭 10년 만이다. 강화 선원사에서 원오국사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승려의 길을 걸었다.

법휘(法諱)는 충지(沖止), 자호는 복암(宓庵)이다. 법명을 법환(法桓)이라고 하다가 충지(沖止)로 고쳤으며 법호는 복암노인(宓庵老人)이다. 1266년(고려 원종7년)에 경남 김해현 감로사(甘露寺) 주지가 됐다.


원오국사가 열반하자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제 6세주가 되었으며, 원나라 세조(世祖)의 요청으로 북경에 가서 극진한 대우를 받고 금란가사(金·袈裟)·벽수장삼(碧繡長衫)·백불자(白佛子) 등을 선사 받았다. 그는 세수 68세, 법랍(法臘) 39세로 세상을 뜨자 충열왕은 시호(諡號)를 원감국사(圓鑑國師)라 하고, 탑액(塔額)을 보명(寶明)이라 지어주었다. 원감국사의 원비(原碑)는 송광사 감로암(甘露庵)에 있으며 탑은 복암 서쪽 200m 중봉(中峰)에 있다.

 

특히 원감국사는 시문에 능하였다. 그의 시문이 ‘동문선’에 실려있다는 것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송광사는 국사의 선교관(禪敎觀)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승려와 학자들로 하여금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편 문개는 평탄한 관리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장원에 급제한 후 한림학사보궐(翰林學士 補闕)을 거쳐 지금 순천시인 평양군사(平陽郡事)를 역임했다. 막내인 신개는 후사가 없기 때문에 현재 위씨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후손이다.

 

서기1293년 1월 10일 68세로 입적(入寂)
遺詩(유시) : 遺偈(유게)

閱過行年六十八(열과행년육십팔) 세상살이 내 나이 68인데
及到今朝萬事畢(급도금조만사필) 오늘 아침 모든 일 다 끝냈네
故鄕歸路坦然平(고향귀로탄연평)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평탄하니
路頭分明未曾失(로두분명미증실) 가는 길 분명하여 헛갈림 없네
手中縡有一枝空(수중제유일지공) 수중에 겨우 지팡이 하나
且喜途中脚不倦(차희도중각불권) 도중에 다리 피로하지 않으니 또한 기쁘네

이밖에 詩 239편,疏(소) 46편, 文 4편, 表 5편, 답서6편, 원문(願文)3편 도합 303편의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 원감국사(圓鑑國師) (1226년 丙戌年 - 1293년 癸巳年)
◎ 수령현(遂寧縣 : 현 장흥)에서 출생
◎ 속명(俗名) : 중이 되기 이전의 이름
◎ 법명(法名) : 중에게 종문(宗門)에서 지어주는 이름.
◎ 수선사(修禪社) : 현 송광사
◎ 구족계(具足戒) :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할 일체의 계 (비구-250계, 비구니-500계가 있음)
◎ 감로사(甘露社) : 경남김해에 있는 절
◎ 숙덕(宿德) : 덕망 있는 노인, 오래도록 쌓은 덕망
◎ 의학(義學) : 공중을 위하여 설립한 학교, 불법신앙 대상으로 하여 닦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학문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일
◎ 청전표(請田表) : 밭에 부과한 조세를 면하게 주청한 표
◎ 법납(法臘) : 중이 된 이후부터 친 나이
◎ 극락왕생(極樂往生) : 이 세상을 떠나 죽어서 극락정토에 가서 다시 태어남, 편히 죽음
◎ 사파세계(裟婆世界) : 석존이 교화하는 경토(境土). 인간세계. 속세계
◎ 행장(行狀)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평생을 지낸 일을 기록한 글
◎ 국사전(國師殿) : 송광사 16국사를 모신 전당 (국사전-국보 56호, 영정-보물-10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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